[부시2기 출범과 한반도정세] 美전문가 진단

조지 W 부시 대통령 2기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제 정세를 연구하고 있는 퍼시픽포럼 CSIS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의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과 미국 관계가 새로운 긴장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 한미 관계(도널드 그로스 아시아 문제 컨설턴트) = 노무현 대통령 정부는 부시 대통령 재선과 함께 미국 내 강경파들을 견제하려고 전례없는 대미 공세를 취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미국 대선 후 대북 정책이 변화되지 않도록 쐐기를 박으려 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노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또는 북한에 대한 군사·경제적 제재방안을 포기했는지 여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한국 정부의 확고한 입장은 미국 정부 내 온건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미국이 대북 강경책을 동원하면 한미동맹 관계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의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북한과 미국이 상호 불신으로 인해 타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은 6자회담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이 실패로 끝나면 회담 참가국 모두 손해를 입게 돼 있다. 또한 동북아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이 지역에서 미래의 안보문제를 여러 나라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틀이 깨지게 된다. 이런 사태 전개를 막기 위해 미국은 북한에 대한 의료지원을 확대하고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작업에 적극 나서는 등 손쉬운 분야에서 서로 신뢰를 쌓아 가야 한다.

◆ 남북 관계(아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스대 교수) = 한국은 개성공단 사업이 남북한 모두에 윈·윈게임이 된다는 사실을 북한 측에 인식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의 교착상태로 한국의 대북 투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 미국과 일본은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트럭 분의 냄비가 초원의 불길처럼 혁명을 몰고 올 수도 있을 것이다. 25년 전 누가 중국의 선전이 오늘과 같은 메트로폴리탄으로 변모할 줄 알았겠는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 등을 둘러싼 남남 갈등도 올해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한국 일각에서는 남북관계를 부부관계에 비유하고 있다. 한국이 큰 싸움을 한 끝에 집을 나간 부인을 집으로 불러들이듯이 북한을 다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강경파들은 이같은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 한중 관계(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연구원) =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은 중국 외교의 실패를 의미한다. 중국의 고위 책임자들이 북한 측을 설득했지만 회담이 재개되지 못했다. 중국과 남북한 관계의 앞날에는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한국과 중국 간의 교역은 매년 50% 이상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중 간의 교역 비율이 떨어지게 되면 양국 간 경제 마찰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한중 간 외교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 한중 경제 협력이 둔화하면 탈북자 문제, 과거 역사 문제 등을 놓고 양국 간 대립이 격화할 수 있다. 고구려역사 문제가 불거진 이래 한국인들은 중국을 차가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오랜 밀월기간을 지나 올해부터 한중관계가 보다 대립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남북한 간 틈바구니에 끼여 있다.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역할 강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북한 사이에서도 조심스럽고 신중한 자세로 영향력 확대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 한일 관계(데이비드 강 다트머스대 교수) = 한국과 일본 간에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양국 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다. 또 일본이 북한에 제재조치를 취하면 한국과 일본이 서로 분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일본의 대북 제재가 실제로 추진되지는 않고 있다.

한국과 일본 관계는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간 우호적인 협력으로 인해 과거보다 발전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북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정치·경제적으로 폭넓게 협력하고 있다.

일본은 이제 전환점에 서 있다. 일본은 북한 문제를 놓고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고 있는 미국 편을 계속 들지, 아니면 점진적인 대북 정책을 추구하는 한국과 중국 편에 가담할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일본의 선택은 동북아 정세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세계일보 / 국기연 특파원 2005-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