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 유홍준 문화재청장

“그동안 문화재관련 행정은 주로 수비였다. 취임 이후 ‘공격 좀 하자’고 했다. 아직 만족할 만한 공격은 안되지만 수비선에서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선 것으로 본다. 앞으로 수비수는 적고, 공격수가 많을 것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지난 10일 대전의 청장실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문화재 행정은 수동적에서 능동적으로, 소극적에서 적극적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청장은 문화재청의 큰 과제로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확대·개편을 꼽았다. 또 제대로 된 복원·보존 정책확립, 매장문화재 발굴제도 개선, 문화재 안내판 교체 등을 들었다. 올해에는 한국 문화를 효과적으로 알리도록 서울 도심 고궁에 대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청장 취임이후 책 한권 못볼 정도로 바쁘다”며 “주위의 기대가 커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미술사학자가 아니라 문화재청장이 되면서 느낀 점은.

“일이 참 많다. 정부기관 중 관할 면적이 가장 넓다. 당장 궁과 능만해도 3억5천만평, 전국 문화재 관련 보수현장 만도 800곳, 매장문화재 발굴현장이 현재 150곳 3백50만평이다. 여기에 바다의 수중문화재가 있고, 하늘을 나는 천연기념물도 있다. 또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분들도 있다. 문화재청의 마인드에 따라 얼마든지 국민의 호응을,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고 절감한다”

-문화재청의 중요 과제와 직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라 보나.

“문화재연구소의 기능 확대와 개편을 우선 들 수있다. 제대로된 보존·복원정책과 발굴제도 개선, 문화재 안내판 교체도 여러 정책 중 중요 과제로 꼽을 수 있다. 청의 조직력 등은 튼튼하고 일 처리도 신속해 놀랄 정도다. 공무원들의 태도를 보면서 선진국을 향한 토대를 느낀다. 다만 수비형에서 공격형으로 바뀔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문화재연구소의 확대·개편은 학계 등 외부에서도 적극 지지한다. 구체적인 추진 계획은.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사실 문화재연구소는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연구인력의 50%가 임시직이고, 5년이상된 인력이 전체의 10%정도로 열악한 환경이다. 연 3만여점의 출토유물 중 보존처리되는 유물은 4,000여점에 그치고, 문화재 보존처리는 장기간·고비용·고급기술이라는 특수성도 있다.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연구·관리하기 위해선 연구소의 확대·개편이 시급하다. 문화재청으로선 우선 지방연구소 2개를 신설할 계획이다. 하나는 전남북 문화재와 해저유물 등을 관리·연구할 나주연구소다. 다른 하나는 서울이나 충북 중원 중 한 곳에 세울 계획이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서울이든 중원이든 이 곳 연구소는 고구려 유적을 체계적으로 관리·연구하게 될 것이다. 연구소의 보존관련 연구인력 확충도 시급하다. 국내 인력이 여의치않을 경우 동남아시아 자연과학도들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일본 등은 동남아 인력을 수년전부터 활용하는 것으로 안다. 이는 이른바 ‘한류’의 수준을 높이거나 확장하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3급기관인 문화재연구소를 1급으로 승격시켜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개편하는 것도 협의 중이다”

-기존에 복원·보존된 문화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제대로 된 복원은 어떤 것인가.

“의례적이거나 면피적이 아니고, 역사적 상상력과 정취를 살리며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아래서 진행되는 복원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으로 보수 등에 대해 수시로 국민들께 설명하는 대국민설명회를 열어 이해를 구할 것은 구하겠다. 예를 들어 화강암 석조유물의 경우 일반적으로 보호각을 씌우거나 실내로 옮기면 잘된 보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화강암 유물은 통풍이 잘되고, 자외선을 받아야 올바른 보존이다. 앞으로 그저 보호각을 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설명하겠다. 미륵사지 동탑 등을 비판한 것은 앞으로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달라”

-매장문화재 발굴 제도개선과 문화재 안내판 교체는 계획대로 잘 추진되나.

“발굴 문제는 워낙 개발이 많다보니 발굴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벌어진다. 한 발굴기관에서 여러 곳을 발굴하고, 그러다보니 일부에선 수익 사업이 돼버렸다. 부실한 발굴이 나올 수밖에 없다. 등록제, 발굴법인 협의체 등 이미 만들어진 정부안을 갖고 공청회를 열었다. 향후 더 충분히 의견을 수렴한다. 문화재 안내판도 8,000여개나 된다. 태스크포스팀이 운영중이지만 손이 부족하다”

-남북 문화재교류에 대해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데.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다. 우선 만나고, 문화재협정을 맺고, 유물교류나 공동 발굴의 순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한마디로 쉽지않다. 통일부에 남북장관급회담 때 남북문화재최고책임자 회담 제의을 요청해 놓았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데 청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문화재 보존 등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청장이 되고보니 상식뿐아니라 더 깊은 전문성까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유물의 보존·관리도 일차방정식이 아니라 미적분이라고 느낀다. 문화재청이 펴는 방안이 자신의 의견과 다를지라도 한번쯤 왜 다를까 하고 이해를 먼저 해줬으면 한다. 특히 세월의 풍상에 따라 훼손되는 문화재 복원의 경우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된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충분히 모아 의사와 마찬가지로 결정적일 때 집도(복원)를 해야 한다”

(경향신문 / 도재기 기자 200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