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어떤 이웃인가

최근 우리 국민은 납득하기 어려운 중국의 처사를 끊임없이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다. 짝사랑에 못지않게 비분강개식 대응도 대등한 한·중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한·중관계가 3차,4차 방정식과 같이 복합적인 측면을 내포하는 주 요인은 수천년에 걸친 역사적 관계와 한반도의 분단상황이 중첩된 것이다. 특히 북한 정권의 폐쇄성, 중국에 대한 의존성, 동아시아에서 강대국들의 이해 충돌 등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첨예한 관심과 개입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중국은 1979년 개혁 개방정책을 실행한 이래 GNP가 30배나 증대할 정도로 부국(富國)의 꿈을 성취해가고 있다. 그러나 계층간 지역간 심각한 빈부격차, ‘중국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의 구호 속에 압살되는 민주화 요구 등 잠재적 갈등의 소지가 증대하고 있다. 또 55개 소수 민족을 한족(漢族)과 통합하는 ‘중화민족’이라는 허구의 민족 개념을 앞세워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주창하면서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의 역사와 민족을 포함한 현재 중국 영토내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공동의 조상을 둔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편입시켰다. 고구려사 문제는 단지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부국의 꿈을 성취케 한 중국의 경제성장은 다른 한편으로 강병, 즉 군사대국의 꿈을 실현토록 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빈부격차의 심화, 민주화의 좌절, 소수민족 문제와 같은 내부적 불만이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은 강대한 조국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올림픽 개최나 고대 문명에 대한 자부심 고취,그리고 대폭적 군사력 증강과 군 현대화, 대규모 군사훈련 등으로 중국인들의 강국의 꿈을 만족시키고 있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응하여 미국과 일본은 이미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하였고 일본과 러시아는 서로 접근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과 안보 질서의 동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평화공존 5원칙’과 함께 중국의 외교원칙이었던 반(反)패권주의는 현재 시험대 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진 문명국가인 중국은 고래로 자국 중심의 천하관과 화이관(華夷觀)에 입각하여 주변국들을 정치적으로 천자의 나라인 중화에 복속시키는 철저한 조공질서를 확립하였고 영토를 팽창시켰다. ‘세계의 중심’인 중국의 왕조사를 정사(正史)로 기록하면서 천하의 일원이라고 본 주변민족의 역사도 정사의 일부로 기록하였다.

역사를 중시하고 두려워하는 중국인의 정신은 타 민족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의 정치적 입장에 입각하여 ‘신중하게’ 기록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당 태종이 직접 출병한 고구려 정벌전쟁의 실패를 기록하지 않은 것, 또 신라의 삼국 통일도 기록하지 않고 왜곡, 축소 서술한 것이다.

고구려사뿐 아니라 조선사까지 왜곡한다고 우리나라에서 흥분하였던 것은 역사 인식의 커다란 차이에 기인한다. ‘중화 중심의 화이 질서’란 결코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으며 고구려와 달리 조선과 중국간의 조공관계는 사실 종속성이 상당히 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지금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중국이 자랑스러워할 일도 아니다.

이제는 우리도 유아적 국수주의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진정한 자신감은 탄탄한 실력과 올바른 이해에서 비롯된다. 선진문명을 수용하되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키고 독립을 지켜온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전통 자랑에 머무르지 말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또 우리와 긴밀한 이웃과 세계에 대해 더욱 심화된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스스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아울러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전문가도 속성식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냄비 끓듯이 고구려사를 연구한다거나 피상적으로 중국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군사력과 경제력의 토대 위에 학문적 문화적으로 국가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한국은 강대국들에게 경시당할 것이다.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담론이 성행하지만 여전히 중화주의 전통과 애국주의 정서가 충만한 중국은 서슴지 않고 불안한 남북관계를 자국의 이해에 최대한 유리하게 요리할 수 있는 국가임을 직시하고 대비해야 한다.

<강명희 /한세대 교수>

(국민일보 200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