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만 보는 ‘소국외교’가 오만한 중국 키웠다

■ 低자세 외교, 고구려史 ‘구두양해’로 어정쩡 봉합
“北韓문제 걸려 中자극안돼…” 소극적
■ 무례한 中國, 의원들에 비자거부·전화위협 하더니
탈북자 처리때도 “한국은 신경 안써”

중국 정부당국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베이징(北京) 기자회견을 강제력을 동원해 저지하고도 “한국 의원이 사과하라”고 반박 브리핑까지 하는 외교적 무례를 감행하고 있다. 이런 데는 우리 외교당국 대중(對中)외교의 기본 자세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당국은 중국의 무례 때마다 ‘조용한 외교’를 내세워 할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로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항의를 할 때도 비공개로 했다.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할 때면 언론에 시간·장소를 알려줘 사진을 찍게 했었다.

2002년 7월 중국은 우리의 마늘시장을 열지 않으면 공산품 수입 규제로 보복하겠다고 위협, ‘2003년부터는 중국산 마늘 수입을 자유화한다’는 합의를 만들어냈으며, 이에 대해 우리 외교통상부는 합의사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한덕수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경질됐다.

이에 앞서 2001년 12월에는 중국에서 마약사범으로 체포된 신모씨가 사형에 처해졌을 때도 우리 외교당국은 사형이 집행된 뒤에야 사태 파악에 나서는가 하면 2002년 1월에는 재외동포법 개정을 위한 실태 조사를 위해 중국을 방문하려던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주한 중국대사관이 비자를 내주지 않는 결례(缺禮)를 했고, 지난해 5월에는 대만 천수이볜 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우리의 여야 의원들에게 주한 중국대사관이 전화를 걸어 “지켜보겠다”는 위협조의 말을 하는 등의 외교적 무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안당국이 베이징시 외곽에서 한국행을 모색하며 은신해 있던 탈북자 비밀 숙소를 급습, 63명의 탈북자와 이들을 돕던 한국인 2명 등 65명을 검거 연행에 나선 것도 ‘이제 더 이상 한국 눈치 같은 것은 안 보겠다’는 외교적 의도를 과시한 것이었다. 이때에도 장치웨(章啓月) 외교부 대변인은 “개별 국가와 외국 대사관이 불법 입국자를 비호한다”며 한국 정부와 주중 한국대사관을 공개 비난하고 나섰다. 지난해의 고구려사 왜곡이라는 외교적 무례를 넘어선 패권주의적 행동에 대해서도 우리 외교부는 중국당국이 대외에 발표도 않는 ‘구두 양해’를 얻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저자세를 보여주었다. 중국당국은 고구려사 왜곡을 중단했다는 어떤 행동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번 한나라당의 베이징 기자회견을 중국 공안원들이 힘으로 저지한 데 대해 쿵취안(孔泉) 외교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언성을 높여 가며 “한국 의원들이 우리에게 사과하라”고 한 것과 한국의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국제적 기준에 맞지도 않는 ‘외국기자 관리 조례’를 적용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중국의 우리에 대한 무례 외교가 도를 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정부는 유독 중국 앞에서는 작아지는 ‘소국(小國) 외교’를 하고 있다. 외교 당국자들은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서 어쩔 수 없다” “중국에는 뭐라고 해봤자 먹혀 들지가 않는다” “북한 핵문제가 있는데 중국을 자극하면 어떻게 하느냐” “중국하고 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더 손해다”는 식의 이유를 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등에 대해서는 할 말을 한다면서 유독 중국에 대해서만은 눈치만 보는 ‘조용한 외교’를 해온 정책을 이제는 전환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 박승준 중국전문기자 200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