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中위협론’ 되새겨 봐야

한나라당 의원단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하려던 기자회견이 중국 측의 물리력에 의해 강제로 저지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 기자회견은 김동식 목사 납북사건 진상규명과 중국 내 탈북자에 대한 인도적 처리를 촉구하려던 것이었는데, 중국이 이를 민감한 정치적 문제로 보고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치지 않고 리빈(李濱) 주한 중국대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 측의 해명과 재발방지 요청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이 중국 국내법을 존중하지 않아서 사태가 발생했다고 반박하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이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 주민이 대규모로 중국에 유입될 경우 중국 내 정치사회적 안정과 중국-북한 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 그리고 북한체제에 미칠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중국은 기획탈북 추진 및 지원단체를 강력 단속해 왔다. 지난해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여 기획탈북 지원단체에 자금을 제공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바 있고 몽골에 탈북자 수용시설을 설치하는 데에도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03년 9월 중국-북한 접경지역 수비 임무를 인민해방군으로 대체한 일차적 목적도 탈북자의 중국 유입을 차단하려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내 탈북자와 납북자 문제를 국제 문제화하려던 이번 기자회견에 대한 중국 측의 강경 대응은 예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측으로서는 그런 행동이 탈북자의 중국 내 외국 공관 진입 등 ‘불법 활동’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봤을 것이다.

中패권외교로 갈등증폭 우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중국이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고도로 통제된 체제하에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주었으며 3년 후로 다가온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였다. 중국은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책임 있는 강대국’의 자세를 지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중국 측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우리에게 ‘중국 위협론’을 고취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동안 중국 문제를 연구하는 대다수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 측에서 제기하는 ‘중국위협론’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해 왔으나, 이제는 중국이 평화를 지향하는 현상유지 국가라는 주장은 한국 내에서 설득력을 얻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이번 사건에 대해 즉각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중국 내 언론 자유와 인권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다시 부각되게 되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강압적 외교 행태로 인한 외교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국 내 탈북자와 고구려 유적지 조사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중국 방문 비자발급 신청을 거부하거나 지연시켰고, 우리 정치인들의 대만 방문과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에 대해서도 대국다운 처신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한국사 소개 부분에서 고구려사를 삭제함으로써 국내의 거센 항의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한중 간 교류가 확대되고 중국의 국력이 커질수록 중국의 패권적 외교에 따른 한중 갈등은 증폭될 소지가 크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중국에 엄정 대응해야 하지만, 정부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정부로서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중국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하고 침체된 국내 경제를 살리는 데도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한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감안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국회 역할분담해 대응을

미국처럼 우리도 대(對)중국 정책에서 정부와 국회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지난해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 언론 및 시민단체의 단호한 태도가 중국 측으로부터 나름대로 ‘성의 있는’ 조치를 유도하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는 사실을 참조할 만하다. 국가 이익 차원에서 정부는 중국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되 국회는 우리 국민의 다양한 여론을 중국에 적극 제기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신상진 광운대 교수·중국학>

(동아일보 2005-1-14)

[中, 기자회견 저지]中 “사과는 우리가 받아야 한다” 

“중국은 무례(無禮)보다 무성의가 더 문제다.”

과거 사례에 비추어 중국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탈북자 관련 기자회견을 실력 저지한 사태의 해결에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당장 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한국 의원들이 (중국에) 사과를 요구했는데 사과는 우리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제사회에서는 보편적 상식과 가치가 국내법 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라며 “중국의 물리력 동원은 이런 상식에 분명히 어긋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무성의는 거의 만성화 단계에 와 있다.

지난해 4월경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란 단어를 삭제했을 때도 중국은 끝내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한국 측에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6월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자 7명이 북송됐을 때도 이 사실을 한국 언론이 보도하자 중국 당국은 처음에는 “그런 일 없다”고 밝혔다가 10여 일 후에야 이를 시인하면서도 구체적 시기에 대해선 역시 함구했다.

이런 무성의는 한국 정부의 저자세가 키운 측면도 있다.

정부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같은 과거사 문제를 항의할 때는 주한 일본 대사를 공개적으로 외교부로 불러 ‘한국민의 높은 관심과 분노’를 전했다. 그러나 유독 주한 중국 대사를 부를 때는 중국 측 처지를 고려해 비공개로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극비 방한했을 때도 이 사실이 본보에 단독 보도되자 정부는 중국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외교부에 대한 보안감사와 취재 기자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조회까지 실시했다.

(동아일보 / 부형권 기자 200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