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덮고 삼한지를 보라

중국의 위, 촉, 오 세 나라를 다루는 삼국지에 대한 관심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하다. 약 80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바탕에 두었지만 삼국지의 위세는 몇 세기를 뛰어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삼국지뿐만 아니라 제갈공명이나 조조 등 삼국지의 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도 계속해서 등장했고 오락계에서도 삼국지라는 단어는 하나의 키워드다. 또한 아직까지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삼국지 관련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인터넷을 통해 삼국지에서 감명 깊게 읽은 부분, 아쉬웠던 점을 서로 나누는 모습은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부터 꾸준히 나타난 모습이다.

하지만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 백번 삼국지를 읽어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과도 같은 그것은 삼국지가 ‘중국’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관우나 장비의 무용담을 읽었을 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제갈공명의 신비로움과 명석함은 한때 내 삶의 지표가 되기도 했다. 관우의 목이 잘리고 장비가 죽었을 땐 밥도 먹지 않고 슬퍼했다. (…) 삼국지를 읽은 뒤 나는 줄곧 중국인들이 부러웠다. 중국이란 나라가 참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영웅들의 이야기는 너무 초라하고 빈약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삼한지>의 저자 김정산도 그 갈증을 느꼈던 모양이다. 처음 읽은 <삼국지>가 월탄이 번역한 삼국지였다고 하는 저자는 <삼국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안타까움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에도 <삼국지>의 영웅들이 존재하던 시기가 있는데 그것에 대한 관심이 <삼국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고 실질적으로 알려지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안타까움도 풀고 <삼국지>를 읽으며 갈증을 느끼던 사람들을 위해 <삼한지>를 내놓게 된다. <삼한지>는 여러모로 <삼국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형식이 비슷할 뿐 근본적으로는 확실히 다른 차이점이 있다. <삼한지>는 한반도의 영웅들을 조명한다는 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대립하던 삼국시대, 숱한 영웅들이 전장의 북소리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그 시대가 책 속에서 생생하게 복원되고 있다.

<삼한지>는 삼국시대의 모든 시대를 다루지는 않는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의 약 100년을 다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방만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표현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익숙한 광개토대왕이나 근초고왕, 진흥왕의 이름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영웅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조명에서 간과됐던 인물들 중에도 많은 영웅들이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가장 많은 영웅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삼국 통일 전의 약 100년의 시간이 절정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삼한지>에는 낯선 이름들이 등장하지만 갈증을 채우는데 부족함은 없다.

영웅들의 탄생을 알리는 1권을 시작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숨겨진 영웅들을 찾는 재미와 알려지지 않았던 삼국시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재미는 <삼국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재미가 분명하다.

김정산의 <삼한지>는 완성형은 아닐 것이다. <삼국지>가 그러하듯이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할 것이고 그에 따라 새롭게 조명 받게 될 것인데 그 시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와 젊은이들이 남의 나라 인물을 통해 꿈과 기개를 키우고, 의리와 충절을 배우며, 술수와 대의를 분별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런 자산이 아예 없으면 모르되 생각할수록 여간 딱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저자의 <삼한지>. <삼국지>에서 느꼈던 그 갈증들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삼국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다.

(오마이뉴스 / 정민호 기자 20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