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함께 만든 역사교재로 새 출발”

80년대 日 역사왜곡 이후 줄곧 관심 1988년부터 韓·日사학자 모임 이끌어
<6>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 등 두 나라 사이에 얽힌 큰 인연이 유난히 많은 올해, 정재정(鄭在貞·54) 서울시립대 교수(한국근대사)는 한·일 두 나라의 공동 역사 교재를 펴낸다. 8년 만의 결실이라 더욱 뜻깊다.

“지난 97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와 역사교사 40여명이 함께 진행했습니다. 1월과 8월 도쿄와 서울에서 마지막 내부 세미나를 가진 후 동시에 책으로 펴낼 예정입니다.”

중·고등학생용으로 만든 이 공동 역사 교재는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를 13장·37절로 나누어 서술했다.

각 장의 앞 부분에는 ‘이 시기의 한국과 일본’이란 항목을 두어 시대적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고, 이어 두 나라의 중요 관계를 항목으로 설정하여 상세히 다룬다.

‘한반도의 세력갈등과 왜’ ‘백제·고구려 멸망과 일본·신라’ ‘몽골의 침략과 고려·일본의 대응’ ‘14세기 후반의 동북아시아 정세와 왜구’(이상 전근대사) ‘조선인의 일본인식과 일본인의 조선인식’ ‘일본의 만주 침략과 조선사회의 동향’(근현대사) 등 각 절(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양국 관계를 동북아시아라는 넓은 맥락에서 조망한다. 그동안 두 나라 역사 교과서가 철저히 자국 시각에서 이들 사실을 봐온 것과 크게 비교된다.

정 교수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한국 침략을 ‘진출’이라고 표현하는 등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국 언론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고, 교과서 문제는 두 나라 사이에서 큰 갈등을 불렀다. 서울대 역사교육과와 일본 도쿄대 대학원을 졸업해 양국 사정에 모두 밝은 그는 1988년 양국의 역사학자·역사교사들과 함께 일본 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학술모임을 시작했다. 이 모임은 10년을 지나면서 양국 역사 교과서를 함께 분석하는 데까지 발전해서 이번에 공동 교재를 만드는 결실을 본 것이다.

“양국의 어쩔 수 없는 시각 차이 때문에 때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곤 했고, 두 나라의 갈등에만 주목하는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화와 토론을 거듭하면서 점차 분위기가 좋아지고 신뢰가 깊어지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정 교수는 “공동 역사 교재 편찬으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일의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고, 나아가 지난해 동북공정으로 역사 전쟁이 불붙은 중국과도 같은 종류의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수십 년 동안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상호 이해와 화해의 길을 터득한 유럽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 이선민 기자 20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