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고구려 토론회' 왜 쉬쉬하나

지난 21,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고구려 문화의 역사적 가치'를 주제로 한중 학술대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한국의 고구려연구재단(이하 재단)과 중국의 사회과학원이 공동 주최한 이 토론회는 참석자와 발표 논문은 물론 개최 장소까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비공개'에 대한 궁금증은 28일 중국에서 돌아온 재단측이 연 기자간담회에서도 풀리지 않았다. 중국측과 합의해 만들었다는 보도자료만 낭독할 뿐이었다. 거기엔 이미 다 알고 있는 토론회 개최 사실과 "최고 수준의 학술토론회였다"는 자화자찬만 있을 뿐 '비공개'사유에 대해선 일언 반구 언급이 없었다. 기자들의 항의성 질문이 잇따르자 고작 내놓은 것이 이번에 슬라이드로 공개된 '광개토대왕비 탁본'이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쉬젠신(徐建新)이 베이징에서 발견한 가장 오래된 탁본이라고 주장했다고 하나, 한국측 학자들도 실물을 보지 못한 상태라 아직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상태다.

'고구려 토론회'를 이렇게 쉬쉬하며 무슨 첩보영화 찍듯 진행해도 좋은가. 고구려사와 관련된 양국의 '대표 선수'끼리 맞붙은 첫 토론회라는 의미는 '과잉 은폐'로 인해 퇴색됐다.

재단측은 "중국 사회과학원측이 비공개를 요청했다"면서 "언론에 공개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고 다른 데 신경 쓰지 않으면서 학술대회에만 전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내년에 서울에서 개최할 한.중 고구려 토론회도 '비공개'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불필요한 오해의 생산자는 양국의 고구려 연구자들 아닌가. 한국-중국 사이에 2000년 전의 고구려 역사를 놓고 '역사 충돌'이 일어나게 된데는 보편적 연구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정치와 여론의 뒤를 좇기에 급급한 사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할 수 있다. 연구자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정직한 성찰없이 엉뚱하게 '오해'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려선 안된다는 얘기다.

이번 사안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학계와 한국의 학계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중국측 요구에 따라 쉬쉬하기 보다 공개적인 방법으로 보편적 설득력을 가진 토론이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고구려사=중국사'를 주장하는 중국측과 그에 반박하는 한국측 논리 사이에 극단적으로 나올 주장도 이미 다 나왔다. 보다 정교하고 미시적인 연구 업적과 함께 내년엔 고구려연구재단이 중국과 다른 역사의 큰 길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중앙일보 / 배영대 기자 2004-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