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은 발해대장경 계승한 것”

발해대장경은 거란대장경의 母本 처음 확인
北方불교문화 발해→ 거란 →고려로 이어져

최근 발견된 8~9세기의 ‘발해(渤海) 대장경’〈본지 8월 7일자 A2면〉이 11세기에 제작된 ‘거란 대장경’의 모본(母本)이었음이 확인됐다. 이로써 서기 926년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발해 것을 그대로 옮긴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거란 대장경을 상당 부분 참고한 13세기의 고려 대장경(팔만대장경)이 사실은 ‘발해 대장경’을 계승했을 가능성이 높아져 발해와 고려의 문화적 계승관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지학자 조병순(趙炳舜) 성암고서박물관장은 “거란 대장경인 ‘대방광불(大方廣佛) 화엄경 (華嚴經)’의 함차(函次)번호가 발해 불경으로 여겨지는 ‘대방광불 화엄경’ 권 제38 ‘대화령국장(大和寧國藏)’과 동일한 것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함차번호란 대장경의 여러 권(卷)을 묶어 천자문 순서대로 매긴 번호로, 이 순서가 동일하다는 것은 곧 같은 계통의 불경임을 의미한다. 화엄경의 31~40권에 해당하는 현존 ‘대화령국장’의 함차번호는 ‘육(育)’이다. 그 앞에 존재했을 21~30장은 앞 글자인 ‘애(愛)’가 되지만 송나라에서 청나라까지의 중국 불경은 이 부분이 ‘장(章)’으로 돼 있는 반면, 거란 대장경은 똑같은 ‘애’자였다.

고려 팔만대장경(1251년 완성)을 만든 결정적 공로자인 승려 수기(守其)는 1087년 완성된 고려의 ‘초조 대장경’과 북송(北宋)의 대장경, ‘거란 대장경’을 모두 비교·교감(校勘)했다는 내용이 ‘고려국 신조대장(新雕大藏) 교정별록(校正別錄)’에 기록돼 있다. 많은 학자들은 지금까지 이 내용을 근거로 “거란 대장경은 중원과는 계통이 전혀 다른 대장경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1991년 중국 산시성(山西省) 잉셴안(應縣)에서 거란본의 일부가 발견된 뒤에도 그와 같은 대장경이 없어 ‘북방 불교문화’의 실체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 오노 겐묘(小野玄妙)는 “고려 대장경이 참고한 거란본은 거란에 앞선 세력(발해)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아직까지 그 근거는 없었다.

‘동일한 함차번호’라는 것은 거란본이 발해본을 사실상 그대로 베꼈다는 얘기가 된다. 조 관장은 “거란이 발해의 궁중 서고를 고스란히 넘겨받았다는 기록이 있다”며 “여기서 고구려-발해-거란으로 이어지는 고대 북방 문화의 계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려 팔만대장경은 이 ‘북방 문화계통’과 당-송으로 이어지는 ‘남방(중원) 문화계통’을 모두 계승·종합한 ‘완정본’이라는 의미이며, ‘북방 문화’는 중원이 아닌 고려로 계승됐다는 것이다.

조 관장은 또 “당시 대장경은 황제의 칙령이 없이는 번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대장경을 발간한 세력은 중원의 통치범위 바깥에 있었던 것이 된다”며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중국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불경 전문가인 박상국(朴相國)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불경사(史)를 다시 써야 할 큰 발견”이라며 “그동안 잃어버렸던 북방 문화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라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4-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