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의 삼국건국 기록 신화 아닌 실제 역사 확인돼

올초 고구려·신라 발굴 이어
‘풍납토성=백제 위례성’ 증명

2004년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초기 기록들이 신화에서 역사로 복권(復權)되기 시작한 첫해다. 올해 졸본성(중국 환인)·위례성(서울)·나정(경주) 등 고구려, 백제, 신라 건국신화의 주요 무대가 본격적인 발굴을 통해 속속 그 실체를 드러냈다. 동명왕이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온조왕이 기원전 18년에 백제를, 혁거세거서간이 기원전 57년에 신라를 건국했다는 옛 기록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셈이다.

22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옛 미래마을 부지에서 열린 풍납토성 발굴조사〈본지 22일자 A14면 보도〉 지도위원회. 조유전(趙由典)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발굴된 유물의 양과 종류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폐기장으로 추정되는 유적 등에서 토관(土管·하수도관의 일종), 초석(礎石·나무기둥 받침대), 중국제 청자, 토기와 같은 200상자가 넘는 유물이 나왔다. 한 전문가는 “이것만으로 ‘한성백제 박물관’을 만들 수 있겠다”고 했다. 백제의 첫 도읍지 위례성(慰禮城)이 과연 어디였는지 그동안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 발굴로 ‘위례성=풍납토성’설이 결정적인 힘을 얻게 됐다. 지난 1997년 이곳 재개발 부지에서 백제 유물층을 발견했던 이형구(李亨求) 선문대 교수는 “당시엔 최고급 건물이 아니면 이렇게 많은 기와를 쓸 수 없었다”며 “이제 이곳에 백제의 왕궁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기원전 1~2세기까지 올라가는 풍납토성의 축조 연대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지난 3월에는 박혁거세 신화의 무대인 경북 경주의 나정(蘿井)에서 신라 초기 우물과 옛 건축물의 흔적이 발견됐다. 출토 유물들은 서기 1~2세기의 것. 이곳에 ‘시조의 사당’(서기 6년)을 세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들어맞으며, 박혁거세는 ‘신화 속의 인물’에서 ‘역사적 인물’로 탈바꿈하게 됐다.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였던 졸본성(卒本城·홀본성)도 중국 당국이 7월 발간한 요령성(遼寧省) 환인현(桓仁縣) 일대의 오녀산성(五女山城) 발굴 보고서를 통해 실재했음이 확인됐다. 보고서는 “이곳이 고구려의 첫 도읍이었음이 확실하다”며 기원전 206년~서기 220년으로 시기를 추정했다.

이종욱(李鍾旭) 서강대 교수는 “삼국의 건국 연대가 ‘삼국사기’의 기록보다 오히려 앞당겨질 수도 있다”며 “교과서의 고대사 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