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학술계 결산]''고구려史 지키기'' 학계 한마음

올해 학술계는 어떠한 분야보다 분주했다. 특히 한국고대사학회, 고구려연구회, 백산학회 등 역사학계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 방안과 연구 축적을 위해 많은 토론회와 학술대회를 가졌다. 한민족사가 2000년으로 축소된다며 강력 반발한 일반국민의 절대적 지지에 힘을 얻어 역사학계는 곧 정부지원 민간 연구기관인 고구려연구재단(올해 지원금 50억원)을 출범시켰는데, 이는 제도교육내 국사과목의 선택화와 일부의 국사 해체론을 감안한 것이기도 했다.

임지현(한양대)·이영훈(서울대)·이성시(일본 와세다대) 교수 등에 의해 제기된 국사해체론은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이후에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라는 주장에서 비롯한다. 그동안 인문사회학계에서 진행되어 온 ‘근대·탈근대’ 논쟁과도 맞닿아 있는 국사해체론은 ‘동아시아사’를 주장해 온 최원식(인하대) 교수와 ‘탈민족주의’ 성향의 김철(연세대) 교수 등과 느슨한 연대를 이루고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 거듭되는 민족분쟁을 지양하고 상생의 터전을 마련하는 취지에서 양국 지식인들이 참여해 올 11월 발족한 ‘한일, 연대21’(회장 최원식)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온 하나의 결과물이다.

한편 임지현 교수의 ‘대부분의 독재는 대중들의 암묵적 동의에 의해 가능했다’는 ‘대중독재론’과 이영훈 교수의 ‘국가적 토지소유가 완전히 폐기되고 사적 지주제가 성립하는 것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때문’이라는 ‘식민지근대화론’은 학계에 커다란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어 한국전쟁 정전 51주년에 즈음해 발간된 ‘박헌영 전집’(전9권·역사비평사)은 3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북한문헌연구:문헌과 해체’(전6권)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공산주의운동사에 대한 연구 토대를 닦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대한민국학술원과 대한민국예술원은 나란히 창립 50주년을 맞았으며 한국영어영문학회 역시 5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었다. 동시에 철학자 칸트 서거 200주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출간 400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학술행사가 열렸고, 러·일 전쟁 발발 100주년을 맞아 이를 현대적으로 조망하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올해 역시 학계의 거목들이 차례로 생을 마감해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이 1월에 타계한 데 이어 사학계의 거목 고병익 전 서울대총장과 이기백 전 서강대 교수가 각각 5월과 6월에, 북한 국어학자 류렬 박사가 7월에, 10월에는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가 타계했다.

(세계일보 / 송민섭 기자 2004-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