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北亞, 협력위해 과거보다 미래로 가야"

크레이그 하버드大 교수 방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경제 협력 전망은 매우 밝습니다. 그러나 북한·대만 문제와 아울러 주요 국가들에서 민족주의가 높아지는 것은 정치적 장애물로 작용할 것입니다.”

미국의 일본사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인 하버드 대학 앨버트 크레이그 교수(80)가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1959년부터 30년 동안 하버드 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지금은 하버드-옌칭연구소 교수로 있는 그는 1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질서와 평화’라는 주제로 공개강연회를 가졌다.

크레이그 교수는 “일본·한국·중국은 미국과 유럽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정작 이웃 나라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며 “제국주의와 냉전을 거쳐 이제 번영의 시기를 맞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평화를 유지하고 지역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미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두 세대가 지났고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별로 없는 데도 그때의 감정이 아직 이 지역을 지배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에서 이를 이용하기 때문”이라며 “한·중·일은 고조되고 있는 자국 내의 민족주의를 억제하고 다른 나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크레이그 교수는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우스운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가 페어뱅크·라이샤워 교수와 함께 쓴 ‘동양문화사(East Asia: Tradition and Transformation)’를 비롯해 대부분의 권위있는 서양의 역사서는 분명히 고구려를 한국사의 일부로 썼다는 것이다. 크레이그 교수는 “중국은 북한의 현 체제가 붕괴하는 경우 새 체제의 수립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펴는 것 같다”고 분석한 후, “하지만 그런 식으로 현재의 정치적 고려를 역사에 적용한다면 국가 간 분쟁은 끊이지 않고 역사는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이그 교수는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갈등에 대해 “북한의 변화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한국 정부와 핵 무기 폐기라는 단기적 관점에 중점을 두는 미국의 입장 차이가 본질”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가 정말 북한을 돕고 싶다면 북한이 국제사회가 신뢰할 만한 책임있고 합리적인 자세를 보이도록 강력히 권고해야 한다”고 크레이그 교수는 말했다.

(조선일보 / 이선민 기자 200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