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필로 써내려간 우리땅 간도

"간도가 어디인지 강연을 듣고도 잘 모르겠더라구. 그래서 지도 위에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세필 서예가 김명수옹(83)이 1,828자의 독립선언서를 간도를 포함한 우리나라 지도 위에 빼곡히 써내려간 이유다. 그는 30여년 동안 세필로 6백여만자를 써온 기록이 인정돼 1997년 8월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대가다. 기네스북에 오른 이후에도 붓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모두 7백50만자를 세필로 써왔다. 그동안 18만자에 이르는 [백범일지]도 그의 붓끝을 거쳐갔으며, 16만자가 넘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도 16폭 병풍 2개틀에 되살아났다.

대작을 완성한 후 주로 불경을 써오던 그가 간도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한 역사 강연회에 참석하면서다. 그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민족통일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인문사회학부)의 역사 강연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강연회가 끝난 후 박 교수를 따로 만나 작품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청했다. 당장 작품 제작에 착수할 생각으로 지도 전문점에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간도의 경계가 어디인지 표시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뉴스메이커]와 한국간도학회에서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기네스북 등재된 세필 '명인'

세필은 상당한 공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특히 작은 글자들이 지도처럼 드러나게 하려면 복잡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원하는 작품 크기의 비율로 지도를 확대하고 그 위에 글자를 쓰기 위한 방안도를 그려넣어야 한다. 원본을 원고지처럼 만들어주는 작업이다. 이렇게 해야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작품이 나온다. 그런 다음에야 본격적인 글쓰기에 들어갈 수 있다. 이번 작품의 경우 글씨를 쓰는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고 전체적으로는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투자됐다.

크기가 1㎝도 안되는 글자를 써내려 가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80세를 넘긴 원로작가가 이토록 힘든 작업을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죽기 전까지 1천만자를 채우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아직까지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지만 건강을 위해 얼마전 술을 끊었다. 붓을 드는 오른손이 행여 떨리기라도 할까봐 운동도 꾸준히 한다.

이번 작품을 공개하면서 그는 "간도는 일찍이 광개토대왕이 호령하던 곳인데 '독립선언서'보다는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을 적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며 몸을 추스려 조만간 재작업에 착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민족의 기상과 되찾아야 할 영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뉴스메이커 / 유병탁 기자 200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