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돌무덤 20기 한달만에 졸속 복원


신음하는 중국의 고구려·발해 유적

지난달 말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의 고구려 유적 우산(禹山)귀족묘지군(群) 입구 전시관. 50인치가 넘는 대형 PDP 모니터 두 대가 오회분(五?墳) 5호묘 벽화를 쉴 새 없이 ‘현장 중계’하고 있었다. 곳곳에 조명을 켜 놓아 대낮처럼 밝은 무덤 안에선 카메라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부를 비췄다. 함께 그곳을 찾은 국내 전문가들은 “온도와 습도를 뒤바꿔 벽화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5개월, 중국의 고구려 유적들은 마구잡이 개발과 왜곡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무분별한 복원, 방치되는 유적들

요녕성 환인현(桓仁縣)의 초기 고구려 고분군인 상고성자(上古城子) 유적에선 인부 10여명이 무덤에 돌을 쌓는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불과 한 달 만에 돌무덤 20여기의 ‘복원’을 서둘러 끝낸 상태였지만 제대로 된 발굴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규철(韓圭哲) 경성대 교수는 “흔적을 대충 살피고 돌을 쌓는 수준이라 또다른 왜곡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쪽에 큼직하게 지어놓은 매표소 건물이 이 ‘작업’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었다. 관광상품 개발을 위한 졸속 복원인 셈이었다.


상고성자처럼 세계유산 등재에서 제외된 고구려 유적들은 제대로 된 고증이나 보존의 혜택에서 멀어져 있었다. 집안시 서대묘(西大墓) 인근에는 고분 10여기가 옥수수밭 가운데 그대로 방치돼 쓰레기더미와 땔감용 나무들로 뒤덮여 있었다. 요령성(遼寧省) 등탑현(燈塔縣)의 고구려 산성 백암성(白巖城)의 일부는 붕괴 위험에 처해 있었지만 이곳 안내판에는 ‘고구려’라는 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조차 큰 길가를 벗어나면 방치된 곳들이 수두룩했다. 집안시의 유명한 고구려 고분 사신묘(四神墓)는 무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풀과 잡초로 뒤덮여 있었고, 임강묘(臨江墓) 주변에는 말똥이 널려 있었다.

반면 2007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는 발해 유적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안을 지키고 있었다. 길림성 화룡현(和龍縣)의 발해 성터인 서고성(西古城)에선 주춧돌이 드러난 건물터 20여곳이 이미 발굴된 상태였고 한쪽엔 기와편 수천 점이 쌓여 있었지만, 일반인은 물론 발굴단이 아닌 전공자의 출입도 막고 있었다.

◆“고구려·발해는 여전히 중국사”

‘고구려사 문제의 해결을 도모한다’던 지난 8월 한·중간의 ‘5개항 구두 양해’는 중국 현지에선 ‘딴 나라 얘기’와도 같았다. 오녀산성 입구에선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의 초상 밑에 ‘중국 고대 북방소수민족 고구려 제1대왕’이라 적힌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집안시 박물관에는 고구려가 한사군 영토에서 비롯됐고 역대 왕이 책봉을 받았다는 등 ‘중국의 지방정권’이었음을 강조하는 안내판으로 가득했다.


서길수(徐吉洙) 전 고구려연구회장은 “앞으로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하는 각국 관광객들은 계속 ‘고구려사는 중국사’라고 왜곡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므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구두 양해’에서조차 제외된 발해사의 왜곡은 더욱 심각했다. 길림인민출판사가 최근 발간한 ‘발해사 사화(史話)’는 첫장에 실린 지도에서 발해의 모든 영토가 당나라의 직할지였던 것처럼 그렸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4-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