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이번엔 신라역사 왜곡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으로 한·중 외교 마찰이 빚어진 데 이어 중국이 이번에는 신라 뿌리를 초(楚)나라라고 주장하며 한국사 왜곡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2000여년 전 진나라 말엽에 방사 한종(韓終)의 인솔하에 초나라 나(羅)씨와 노(盧)씨 씨족 3000여명이 한반도 동남부로 이주했으며, 이들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 그리고 후의 신라국을 건립했다는 가설이 중국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중국 우한(武漢) 소재 중난민쭈(中南民族)대학 남방소수민족연구소의 양완쥐안(楊萬娟) 교수는 2000년 전을 거슬러 올라 역사적 문헌고증을 한 결과라며 이같은 가설을 제기했다. 그는 또 당시 한반도에 건너갔던 방사 한종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桓雄)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가설은 지방에 있는 한 중국인의 주장이라 하지만 고구려 역사논쟁에 이어 외교적인 마찰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양 교수의 주장은 현지 신문인 후베이일보(湖北日報)가 9일자에 보도했다.

(연합뉴스 2004-12-10)

中 학자 `신라 뿌리는 楚나라' 주장

단군신화 원형도 중국에서 비롯 해석 =고구려에 이어 고대사 해석 논란

2천여년전 진나라 말엽에 방사 한종(韓終)의 인솔하에 초(楚)나라 라(羅)씨와 로(盧)씨 씨족 3천여명이 한반도 동남부로 이주했으며, 이들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 그리고 후의 신라국을 건립했다는 가설이 중국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중국 우한(武漢) 소재 중난민쭈(中南民族)대학 남방소수민족연구소의 양완쥐안(楊萬娟) 교수는 2천년 전을 거슬러 올라 역사적 문헌고증을 한 결과라며 이같은 가설을 제기했다.

그는 또 당시 한반도에 건너갔던 방사 한종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桓雄)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구려 역사를 놓고 한국과 중국이 역사왜곡 논쟁을 하는 와중에 나온 이같은 가설은 지방에 있는 한 중국인의 주장이라 하지만 향후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양 교수의 주장은 현지 신문인 호북일보(湖北日報)가 9일자에 보도했다.

양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고대 삼국의 하나인 신라의 뿌리는 현재 중국 후베이(湖北)성 샹판(襄樊.고대에는 襄陽과 樊城)에서 비롯된다는 것.

양 교수는 우선 한국의 지명(주로 동부지역) 가운데 많은 곳이 현재 후베이성에 존재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어떤 역사적 연관'이 있지 않을까 호기심을 갖게됐다고 한다. 해당 지명은 강릉(江陵), 양양(襄陽), 단양(丹陽), 한강(漢江), 태백산(太白山)이다. 양 교수는 올 6월 단오제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 강원도 강릉지방을 방문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북방은 주(周)나라, 남방은 초(楚)나라가 있었고 초나라 건국지는 단양(丹陽)으로 한강(漢江) 상류지역이다. 초나라는 그후 세력을 넓혀 강릉(江陵)으로 도읍을 옮겨 단양 일대를 지배했다. 한강은 현재 산시(陝西)성 친링(秦嶺) 남쪽에 있는 태백산(太白山)에서 발원해서 동남쪽으로 흘러 우한에서 창장(長江.양자강)으로 합류하는데 그 하류지역이 한양(漢陽)이라고 양 교수는 지적했다.

양 교수는 또 단군설화의 중국 연관성도 주장했다.

한국 단군설화가 숭배하는 토템이 곰과 호랑이인데 초나라 토템 역시 곰이라는 것이다. 초나라 왕족 성은 슝(熊.곰)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다 본 두 지역(三危와 太白)이 오늘날 쓰촨(四川)성과 간쑤(甘肅)성 교차지에 있는 민산(岷山)과 한국 강원도 태백산을 가리킨다고 양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각에서 주장하는대로 `태백이 묘향산이라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환웅이 천부인(天符印.거울, 칼, 방울) 3개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것은 무속신앙의 무구를 가리키는 것인데 초나라는 무속신앙이 성행했고 초나라 후예 묘족(苗族)은 아직 각종 무속신앙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또 묘족은 지금도 단오절에 마늘과 쑥으로 잡귀를 쫓는다고 한다.

양교수는 이러한 것이 단군신화가 고대 초나라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단군신화와 한국의 일부 지명(주로 강원도)이 중국 고대 초나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가설이다.

양 교수는 초나라 사람들이 한반도에 조직적으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은 한종(韓終) 이라는 방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진시황때 서복(徐福)이라는 방사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간 것처럼 당시 한종은 한국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접경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때 데리고 간 사람들이 라(羅)씨족과 로(盧)씨 씨족이다. 라국(羅國)과 로국(盧國)은 현재 후베이성 샹판 근처에 있었는데 기원전 690년 초나라에 정복되어 각각 라(羅)씨와 로(盧)씨성을 하사받고 남쪽으로 강제 이주당해 오늘날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와 후난성 펑황(鳳凰)현 일대에서 속국으로 지냈다고 한다. 양 교수는 이런 내용을 좌전(左傳) 등 고문헌에서 찾아냈다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진시황 말기 한종이라는 방사가 이들 라국과 노국 사람 3천여명을 데리고 한국으로 건너갔으며 이들이 한국에 정착해서 각각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을 세웠고 진한이 신라(新羅.새로운 라국)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의 초기 국가명칭이 `사로국'인 것은 `사라(斯羅) 또는 사로(斯盧)'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양 교수는 이 부분 논증과정에서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 한국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을 인용하고 있다.

한국(韓國)이라는 명칭도 이런데서 연유됐다고 양 교수는 주장한다. 특히 신라가 일찍부터 한자를 사용한 것도 진나라 말기 중국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한국의 라(羅)씨와 로(盧)씨 본가는 후베이성 샹판 지역이라고 양 교수는 주장한다. 일부에서 한국의 로씨의 본이 산둥(山東)성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산둥에 세운 나라(盧子國)를 세운 사람들은 한반도로 건너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런 가설로 인해 신라문화의 원류는 초나라 문화 특히 라(羅)와 로(盧)씨 문화이고, 그 결과 현재 한국의 경상북도 북부나 강원도 일대에 초나라 지명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양 교수의 결론이다.

(연합뉴스 / 이우탁 특파원 200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