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한국 외교의 현실

한때 '맥''다물''한단고기' 등의 책에 몰두했던 적이 있다. 우리 민족이 과거에 중원을 호령했다는 '비사'와 우리나라가 앞으로 수천년 동안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예언서'를 읽으면서 한껏 민족적 자부심에 젖어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상상으로나마 일본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하면서 흥분했던 적도 있다. 반면 가장 읽기 싫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역사는 고구려 멸망사, 위화도 회군, 임진왜란(이순신 장군의 해전들과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빼고), 병자호란, 효종의 승하로 인한 북벌계획의 실패,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망국으로 귀결되는 근세사였다. 모두가 우리 민족의 웅지가 꺾이고 영토가 줄어들고 외세에 당하는 얘기들이다 보니 읽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가면 갈수록 오히려 '실패한 역사'에 빠져들게 된다. 한편으로는 억울함과 비통함을 느끼면서도 늘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의 처지에 대한 냉철하고 현실적인 자각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실패한 역사의 기록들이다.

이 역사는 무엇보다 우리가 강대국들과 어떻게 '비비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중국과 끝까지 일대일로 맞서다가 망한 고구려나 발해보다는 비록 비굴해 보였지만 신성 강대국인 명을 공격하는 것이 무모하다고 생각한 이성계의 판단이 우리 민족의 생존을 가능케 한 지혜였다. 비록 '폭군'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광해군은 새롭게 부상하는 청을 잘 구슬리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반면 당시의 '사림'은 명분을 내세워 몰락하는 명의 편을 들다가 결국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중국.일본.미국과 같은 '패권국가'에 둘러싸여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습에서 화끈함 대신 비애를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남을 정복하고 세계를 호령하는 사이에 우리는 기껏해야 "한번도 남을 침략해본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 문화민족" 이라는 말로 자기 최면을 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억울한 일이지만 우리 역사는 양만춘이 안시성 싸움에서 당 태종을 물리친 이후 한번도 '화끈하게' 강대국과 한판 붙어서 이겨본 적이 없는 역사다(이 전투 역시 고구려의 멸망을 방지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현실을 가장 애써 외면하는 것이 북한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김일성이 일본을 상대로 장쾌하고 통쾌한 승리들을 거두면서 민족해방을 도모했으며 우리민족사에서뿐만 아니라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세계의 역사가 평양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온 세계가 흠모해 마지않는 지도자의 영도 아래 살아가고 있는 가장 선택받은 민족이 한민족이란다. 이러한 허구는 분명 심리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 소싯적에 탐독하던 허구적 역사소설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를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실로 지대하다. 온 국민을 굶기고 전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한편 민족 전체를 인질로 삼은 핵무기 개발에 광분하고 이를 무기로 강대국에 대드는 돈키호테가 되는 것이 주체사상의 결말이다. 이것이 과연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인가? 이렇게 해서 미국과 일본에 큰소리치는 것이 그토록 자랑스러운 일인가?

요즘 참여정부는 미국에 대해 '할 소리는 하는' 것을 매우 큰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다. 분명 과연 저래도 되나 하면서도 우리가 언제 한번 대들어 봤나 하는 생각에 내심 통쾌한 면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적인 분풀이, 스트레스 해소를 잠시 만끽하는 것은 좋으나 우리는 언제나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가 '강소국'이 되고 '강중국'이 되는 것도 다 좋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미국.중국.일본과 같은 '강대국'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의 자존심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강대국과 '비비고' 살면서 우리의 이익을 최대한 취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오히려 큰소리만 치다가 당하거나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데서 오는 비애와 치러야 하는 대가가 훨씬 더 크다. 우리의 역사가, 그리고 오늘날 북한의 경우가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주는 교훈이다.

<함재봉 연세대 교수.정치사상>

(중앙일보 200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