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싶습니다"

북경한국국제학교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저는 요즘 별 성과도 없으면서 거의 매일 밖으로 <부탁>만 하러다니고 있습니다. 때로는 문전박대를 받기도 하고요. 어쩌다 남들이 기피하는 인물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보다는 선생님들과 가까이 할 시간이 적음을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장의 할 일은 학생의 교육 문제를 차분히 생각하고, 선생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 좋은 방법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여의치 않아 늘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김태선(52)씨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국 학교의 교장이다. 그런 그가 학교업무를 보기보다는 기업들을 상대로 세일즈에 나섰다. 학생들이 공부할 마땅한 학교건물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북경한국국제학교. 1998년 9월 1일, '몸은 외국에 있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뜻으로 교민들이 세운 베이징 내 한국학교다. 하지만 지난 6년 동안 그들은 학교를 네 번이나 옮겨야 했다. 북경한국국제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단 위기에 놓인 북경한국국제학교 신축 공사

▲ 2005년 7월 완공 예정인 북경한국국제학교 신교사 조감도
ⓒ2004 정호갑
"중국 학교에 사정이 있으면 수업을 중단하기도 해야 했고, 아침 모임이 있을 때 그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애국가를 틀기도 하였습니다. 가끔 외국 학교와의 만남에서 왜 너희들은 너희 학교도 없느냐는 물음에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하며 얼버무려야할 때도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국학교를 세우겠다는 뜻으로 시작했지만 그들에겐 건물을 세울만한 비용이 없었다. 때문에 6년여 간 여러 중국 학교를 전전하다가 현재에는 창평에 있는 중국 육영쌍어실험학교(育榮雙語實驗學校)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주인이 비워달라고 하면 비워줘야 하는 설움의 세월이었다.

그러던 이들은 지난 6월 8일 3636평에 대지에 신교사 건축을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건물에서 당당히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공사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북경한국국제는 공사 중단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의 재외국민 교육지원 절차에 따라, 총공사비 840만 달러 가운데 정부 지원 예산이 460만 달러이며 나머지 380만 달러는 학교 자체에서 모금해야 한다. 삼성ㆍ포스코ㆍSKㆍ두산중공업 등 북경에 나와 있는 일부 대기업들이 건축 모금에 적극 동참하였고, 중국 동포 변호사인 김연숙씨도 선뜻 1만 달러를 내어 놓았다. 이렇게 하여 현재까지 모금된 금액은 170만 달러이다. 하지만 210만 달러를 더 모금해야 한다.

올해 정부에서 지원하기로 한 170만 달러도 매칭 펀드(중앙정부의 예산지원자금을 자구노력에 연계하여 배정) 방식으로 지원되기에 올해 안에 40만 달러를 더 모으지 못하면 정부 예산마저도 끊어져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현재 북경한국국제학교는 일 년에 35만 달러를 내고 중국 학교 건물을 빌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7월이면 계약이 끝나는데 더 이상 연장될 수 없음을 이미 통보받은 상태이다.

나라 잃은 시대도 아닌데...

98년 개교 당시 58명이었던 학생은 2004년 현재 560여명이 되었으며, 부속 유치원 110여명 그리고 토요한글학교 180여명까지 합치면 850여명의 싹들이 이곳에 모여 중원 대륙에서 무궁화를 활짝 피우기 위해 배움의 길을 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신교사 건축이 막히면 이 아이들은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하여야 한다. 나라 잃은 시대도 아닌데 이 대식구를 받아 줄 중국 학교도 없다고 한다.

보다못한 북경 교민들도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섰다. 대사관에서도 나섰다.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비롯하여 여러 행사를 통해 살길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태선 교장도 북경 현지 기업들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했다. 고등부 3학년 아이들은 지난해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내고 이른바 명문 대학이라 일컫는 대학에 합격하여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때때로 영어권 학교에 다니는 한국 아이들을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이들의 어깨에서도 자부심이 묻어난다.

북경에 한국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

물론, 북경에는 북경한국국제학교뿐 아니라 영어권 학교, 중국 학교도 있다. 영어권 학교는 미국, 영국, 싱가포르에서 경영하는데, 회비는 한국학교의 7배 수준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영어를 더 배우기 위해 연간 2만 달러 이상되는 회비를 내고 영어권 학교를 다닌다. 이들은 중국어를 좀 더 잘 배우기 위해 현지 중국 학교에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상태로 받는 교육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중국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외국 학생을 위한 생활 지도도 제대로 되지 않기에 엇길로 나가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회비도 중국 학교의 경우에는 외국인에게는 중국 아이들보다 많이 받는다.

반면 북경한국국제학교 교육 과정은 한국 교육 과정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만 중 · 고등의 경우 일주일 수업이 한국에는 34시간 전후인데, 북경한국국제학교는 40시간이다.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중국 역사를, 우리말을 바탕으로 하여 중국어와 영어를 더 공부한다. 그리고 중국 생활을 하면서 몸으로 중국을 배워간다.

“진정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적인 장군총. 하지만 지금은 중국의 역사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2004 정호갑
북경한국국제학교 아이들은 올해 두 가지 큰 경험을 하였다. 하나는 흔히 말하는 '동북공정'이고, 다른 하나는 '탈북자 문제'다.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아이들은 동북지방으로 테마학습을 떠났다.

高句麗是 … 中國東北少數民族與地方政權之一 고구려시 … 중국동북소수민족여지방정권지일 : 고구려는 … 중국 동북 소수 민족이 구성한 지방 정권의 하나이다)

중국 정부가 8000만 위안(우리 돈으로 120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7월 3일 세계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다시 문을 연 집안시(集安市) 박물관 입구의 머릿돌에 적혀 있는 글이다.

동북공정 현장을 접한 아이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고등부 2학년인 김만수는 고구려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역사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미래를 열어가는 힘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 탈북자들이 북경한국국제학교에 마련하여 준 교실에서 저녁 간식을 먹고 있다
ⓒ2004 정호갑
지난 10월 22일 아침에는 29명의 탈북자들이 북경한국국제학교 교장실로 기습한 일이 있었다. 갑작스런 일이긴 했지만 '탈북자'문제는 북경한국국제학교 내에 있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탈북 문제가 강 건너 불 보듯 팔짱을 끼고 있을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 현실의 문제라는 것.

국사를 담당하고 있는 신선호 선생은 수업 시간에 탈북자의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와 북한 그리고 중국과의 역학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통일에 대해 토론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빵을 사와 가지고 그들(탈북자)에게 전달해 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위 두 가지 사례는 '북경한국국제학교'가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산교육의 내용이었다.

'북경한국국제학교' 김태선 교장 등 학교관계자, 교민들은 북경한국국제학교의 교육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베이징의 거리로 나서고 있다.

진정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몸은 비록 외국에 있더라도 우리 국어와 역사, 그리고 문화를 배워야 합니다. 이곳 중국 땅에 <북경한국국제학교>가 외롭지만 당당하게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북경한국국제학교 홈페이지 학교장 인사말

(오마이뉴스 / 정호갑 기자 2004-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