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中, 고구려사 집착은 소수민족 다잡기”

“최근 한국-중국 간에 이슈가 된 고구려 문제에 대해 한국이 보인 반응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과거의 영토문제와 연결시켜 다뤄서는 안 됩니다. 물론 중국은 고구려가 한국 문화유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해야지요.”

6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주최한 학술회의에서 ‘민족, 민족주의, 민족국가’ 주제 발표를 하기 위해 내한한 프라센지트 두아라 미국 시카고대 역사학 과장(사진). 그를 학술행사에 앞서 이날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중국근대사와 민족주의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그의 저서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 근대중국의 새로운 해석’이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판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이 근대 ‘민족국가’의 시각으로 고구려를 바라보는 데서 고구려사 문제가 생겨요. 중국의 고구려사 문제는 북한 정권의 위기와 중국-북한 국경의 불안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현재 중국이 겪는 다민족주의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의 일환이기도 하지요.”

그는 중국의 행태가 지구적 자본주의화, 즉 세계화와 연결돼 있다고 본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은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민족주의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중국 내 한족과 자본력이 풍부한 해외 한족이 연계를 강화하면서 소수민족이 다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 이슈를 제기한 것도 불만이 커지는 소수민족을 다시 다민족주의의 틀 안에 넣어 민족주의를 강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두아라 교수는 근대 민족 또는 민족주의는 근대 민족국가(nation state) 중심의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산물이라고 본다. 그 체제 안에서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민족, 민족주의를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아라 교수는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민족국가로 대표되지 않는 민족주의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민족주의의 핵심요소인 영토성을 벗어난 민족주의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 이슬람 테러리즘 등의 종교적 민족주의가 그런 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의 대안은 없는 것인가.

“세계화의 진전은 국가간 경쟁도 치열하게 만들지만 상호의존도 심화시켰어요. 따라서 민족주의의 자율성이 제한되면서 한 민족국가가 일방적인 행동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는 민족국가 단위의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존속하는 한 민족주의는 경쟁력 제고를 위해 중요한 수단으로 계속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민족의 ‘순수한 정수’를 주장해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생명을 훼손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유대, 공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 민동용 기자 2004-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