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美경제 ''중국 쇼크'' 기우가 아니었다

핵 문제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집권 2기의 주요 정치·외교 현안이라면, 중국 경제의 도전은 경제분야의 최대 난제로 손꼽힌다. 21세기의 ‘총성 없는 경제전쟁’에서 미국은 갈수록 강도를 높이는 중국 공세를 절감하고 있다. 중국의 상품과 노동력은 소비재 산업을 넘어 이제는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침투해 미국 경제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으려는 미국과 이를 차지하려는 중국의 자존심 대결 양상, 중국 경제의 아시아 내 영향력 확대 움직임 등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미국이 ‘차이나 프라이스’라는 말 한마디에 벌벌 떨고 있다.

차이나 프라이스란 중국 상품이 미국 제품보다 평균 30∼50% 싸다는 말에서 유래해 현재는 중국 경제의 위력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말로 통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6일자)는 미국 경제의 숨통을 죄어오는 ‘차이나 쇼크’를 긴급 진단하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만은 중국을 따돌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유명 경제학자들마저 미국 경제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 중국의 경제 공세=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저가 상품을 공략했다면 미국은 첨단 기술을 동원한 고부가가치 산업과 지식산업에 집중해 영원히 중국을 따돌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중 무역관계를 진단하는 세미나 현장의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언제 중국에 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미국 경제의 허약성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일부 침통한 기색도 역력하다.

미국경제위기론은 기우에만 그치지 않는다. 유명 경제학자들마저 미국이 오판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차이나 쇼크로 2000년 이후 미국에서 사라진 일자리만 270만개. 화이트 칼라 일자리의 아웃소싱(위탁)은 실업자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컨설팅사 포레스터 리서치는 아웃소싱 확산으로 2015년까지 미국 내 일자리 340만개가 사라질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사무직 종사자 6%가 직장을 잃는다는 뜻이다.

미국 무역적자도 대부분 중국 경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지적된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1999년에 약 687억달러였으나 불과 4년 후인 2003년에는 곱절인 1241억달러 규모로 늘었다. 올해는 1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심각성은 미국 경제의 중추인 하이테크 산업마저 중국에 맹추격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하버드 대학의 리처드 B 프리먼 교수는 “중국이 저임금과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모두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면서 “이 두 분야를 뺏기면 미국 경제에 큰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했다.

◆ 다급해진 미국=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위크 등 미국의 유명 경제지들은 일제히 차이나 쇼크 경고음을 내보내고 있다. 이는 미국이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일자 전문가 논평에서 중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소식을 전하면서 중국의 경제력 확장을 크게 우려했다.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가 중국 경제를 견제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지적재산권 규제 강화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미국은 달러에 비해 저평가된 위안화가 중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15∼30% 평가절상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 환율을 통한 보호무역 강행에 대해 WTO에 제소할 태세다.

중국은 그러나 갑작스러운 환율 변동이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최대한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은 또 중국 시장에 넘쳐나는 해적 상품이 자국 기업들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이를 문제삼겠다고 경고하지만 중국 정부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중국 경제의 위협에 다급해진 부시 대통령이 집권 2기 들어 어떤 식으로 반격에 나설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中, 亞맹주 노린다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패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일 ‘중국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 주문을 걸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세안 회원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소식은 중국이 아시아에서 경제력을 정치적인 지렛대로 사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중국의 아시아 패권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존 타시크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지난 1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은 논평에서 중국은 아시아 내 미국 우방국들에 미·중 가운데 택일하도록 압력을 넣으며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비공식적으로 대만을 방문하자 ‘처절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호주에 대해서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에너지·광업 협력을 미끼로 내걸었다. 또 한국에 대해서는 옛 고구려 영토를 놓고 역사 분쟁을 일으켜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북한 지역을 접수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고 타시크 연구원은 분석했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경제를 넘어 교육 문화 분야 등으로 확산하면서 미국의 대체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진단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에서 과거 영어 공부에만 전념하던 학생들이 중국어 열풍에 휩싸였다.

태국 중국어문화센터에 다니는 롱세악시옹은 “몇년 전까지는 미국이 ‘넘버원’이었지만 머지않아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미국 비자 발급이 어려워지자 동남아권 학생들이 미국 대신 중국 유학길에 오른 것도 중국 열풍의 배경이 됐다고 분석한다.

교육학자와 외교관들은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도 최근 “세계 각국과 공동으로 문화를 진흥하기 위한 준비가 돼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문화전쟁의 강도를 높여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세계일보 / 박선영 기자 2004-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