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동북공정' 공동연구 추진중"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중요한 한국의 조직은 고구려연구재단이다. 지난 3월1일 정식으로 출범한 재단은 불과 몇 달만에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 <중국의 발해사 연구>, <중국의 동북변경 연구> 등 10권의 책을 펴냈다.

12월에는 발해관계와 한중관계 연구목록, 발해관계 사료집과 북방관계 사료집 등 4권의 책을 낼 계획이다. 또 잡지로 북방사 논총과 영문 저널을 펴낸다. 고구려 연구재단은 현재 연구원 20명 등 31명의 인력이 있으며 장기적으로 연구원을 5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오마이뉴스>는 고구려연구재단 김정배(64) 이사장을 지난 24일 만나 그동안의 소감과 앞으로 계획을 들어봤다.

지난 7월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방한 뒤 역사왜곡에 대해 정치권이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관측과 관련, 김 이사장은 "그런 면이 있다"며 "그러나 학자들은 전혀 영향이 없다. 학문적으로 타협은 없다"고 말했다.

동북공정과 관련 북한과의 공동 대응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에대해 김 이사장은 "현재 정치적인 문제로 잠시 중단된 상태이지만 이미 북한 쪽에 공동연구 제의를 했다"며 "북한 학자를 우리 재단에 초빙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북쪽이 응할 것인가가 문제일 뿐 우리는 항상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고구려연구재단이 단지 고구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연구를 해야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그는 "다음 달 나올 학술지의 이름을 <북방사 논총>이라고 이름붙인데서 드러나듯, 우리 재단은 '동아시아'가 아니라 고대부터 현재까지 모두 포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구려연구재단은 민간 기구로 남아있는게 오히려 중국과의 논쟁에서 더 우리 입장이 떳떳할 수 있다"며 "12월에 나올 영문 저널의 편집위원에 몽골인, 러시아인, 미국인도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은 많이하고 말은 적게하라는 격언이 있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 실천을 좋아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인 김 이사장은 한국고대학회 회장과 단군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한국 민족문화의 기원>, <한국 고대의 국가기원과 형성> 등 여러 권의 저서와 '동북아 속의 한국의 암각화', '한국청동유물의 금속학적 분석' 등의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또 지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고려대 총장을 역임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고구려연구재단이 설립된지 몇 달이 지났는데 그동안의 소감은?

"처음 이사장을 맡을 때부터 두 가지 관점에서 일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첫째,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한국이 먼저 학문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정리해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만약 학문적 밑바탕이 튼튼하지 못하면 정치권이 나서서 공격하려고 해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학문을 통해서 소화를 해야지 정치적 논리로 학자가 나서면 어용이 된다. 고구려 역사가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기본 역사서에서부터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자신이 있었다."

- 그동안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나.

"크게 어려움은 없지만 어디든지 첫 출발에는 불필요한 오해가 있다. 예를 들어 이사장이나 상임이사의 이력을 보고 고려대학교가 전부 하는 것처럼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연구원 가운데 고대 출신은 2명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해가 풀리기 마련이다. 사실상 5월 말부터 연구원 진용을 갖추는 등 늦게 출발해 시간이 짧았지만 우수한 연구원들 덕분에 국민과 국가가 기대하는 업적을 내놓게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 다음달 간행할 학술 저널의 이름이 <북방사 논총>인데 특별히 이렇게 지은 이유는?

"고대의 우리 모든 역사가 북쪽에 있고 그동안 남북으로 갈려 있고 공산권에 대한 제약 때문에 연구를 많이 못했다. 이제는 우리가 북방에 눈을 돌려야 한다. 북방은 중국 동북지역, 북한, 러시아, 몽고, 중앙아시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지역을 가리킨다."

재단의 위상과 성격에 대해 일부 논란이 있는데…

"우리 재단의 명칭 때문에 일부에서는 연구 범위가 고구려 역사뿐이라고 생각하는 등 오해를 한다. 학술지의 이름을 <북방사 논총>으로 지은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민족 북방사 전체를 포괄한다.

동북공정과 관련된 재단이라 '고구려'라 이름 붙였을 뿐이다. 재단의 연구분야는 현재 고조선·고구려역사·고구려문화·발해·민족문제·동아시아 등 6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만 '동아시아'가 아닐 뿐이지 고대부터 현재까지 북방에 관한 것은 모두 포괄한다.

또 '동아시아'라는 이름을 걸면 한국·중국·일본 모두를 총괄해야 한다. 이럴 경우 각 분야에서 모두 자금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현안인 동북공정과 관련해 출발했으니까 거기에 대응하면서 범위를 넓히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두 번째 우리 재단의 성격은 연구가 중심이다. 예를 들어 국사편찬위원회는 사료간행이 기본목적이고, 정신문화연구원은 연구와 함께 교육 기능도 포함한다. 반면 우리는 순수하게 연구 중심이다. 연구재단은 북방사에 관한 귀한 자료를 모아 정부와 전문가들의 연구를 뒷받침할 것이다. 백화점식으로 운영하면 부실화 된다."

- 북한과의 학술교류 계획은 있나?

"북한 쪽에 공동연구 제의를 해놓은 상태다. 지금은 정치적인 문제로 중단된 상태일 뿐이다. 그러나 이 달 말까지 연구 논문제목과 요약을 서로 교환하기로 했다. 이달 말 되면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미 북쪽 논문을 받아 지난 24일 <북한의 최근 고구려사 연구>라는 책도 펴냈다."

- 북한학자를 연구재단에 초청하는 방안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북쪽이 얼마나 응할 것인가다. 우리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북쪽에 대해 학문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북한과 공동으로 고구려·발해 유적도 공동발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북한도 발해 영토는 그리 넓게 포함하지 못하고있다. 결국 중국의 태도가 중요한데 그들은 공동발굴을 허용치 않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허용하고 있어 10여 년 전 내가 우스리스크를 먼저 발굴했고 2차로 크라스키노를 했다. 당시 북한 학자들을 불러 같이 작업을 했다. 과거 역사에 대해 남북학자들이 함께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 고구려 옛 수도였던 집안을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모습. 제공:고구려 연구재단
ⓒ2004 .
- 중국 사회과학원과 12월 21일∼22일 학술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는데 어떻게 이뤄졌나?

"우리 재단이 독자적으로 추진해 성사시켰다. 베이징에서 하기로 결정했는데 중국에서도 흔쾌하게 응했다. 중국도 이유야 어쨋든 사방에서 나오는 비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이고 그들이 응한 것은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 중국과의 공동 학술회의 결과물은 편찬할 생각인가.

"논의 중이다. 공동 발표회 자체는 가급적 비공개로 하기로했다. 대신 그 결과를 중국에서 발표하고 그 다음 구체적인 것은 이후 우리가 자유롭게 공개할 것이다. 처음부터 한국 스타일로 일을 처리하면 교류가 힘들어진다."

- 중국은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서남공정, 서북공정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이는데 한국은 동북공정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 여러 공정을 하는 이유는 중국 국경이 광범위하고 소수민족 정책과 관련한 필요에 의해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학문적으로 논쟁하고 해결해야할 문제다. 우리가 동북지역 뿐 아니라 독도분쟁과 같은 일본과의 역사적·지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동북공정의 경우 왜곡이 아니라 침탈이기에 국민의 힘을 얻어서 논쟁을 하고 풀어나가야 할 일이다."

-동북공정 자체가 영토·민족 문제 등 다방면의 연구과제를 두고 있다. 이에 대해 고구려연구재단도 정책수립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은데….

"정부 각 부처마다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연구기능이 있다. 여기서 남의 영역을 불필요하게 침범하거나 중복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통일·외교·국방과 관련된 사안이 있으면 같이 하면 된다. 우리도 또 정책 연구과제를 가지고 있다."

- 총리실 산하에 외교·국방·통일부와의 공동 조정 기관을 둬야한다는 견해도 있는데.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외교통상부 차관이 중심이 돼서 각 부서별로 이 문제를 점검하는 기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것은 대중국과의 일이고 우리 연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큰 신경은 쓰지않고 있다."

- 고구려연구재단 지원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그런데 위상이 그냥 민간법인인데 차라리 정부출연기관으로 해서 지속성과 재정적 안정성을 갖추는게 낫지 않나?

"정부 출연기관으로 하면 외부에서 볼 때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가급적이면 민간기구로 존속하면서 지원을 받는 것이 떳떳하다고 본다. 여야가 고구려 문제는 협조해 주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 정부출연기관으로 하면 구조조정 때 통폐합 1순위가 된다는 분석도 있기는 하다.

"그런 면도 있다. 고구려연구재단과 중국 연구기관과의 차이점은 우리는 민간기구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강점이다. 정부의 출연기관이나 부속기관이 되면 정부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고 밖에서 오해할 수있다."

- 자료수집에 어려움은 없나.

"예산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북방과 관련된 서적을 구입하면서 공개입찰을 해 잡음을 없앴다. 중국의 경우 잘 공개되지 않는 자료는 연구원을 직접 중국에 보내 가져오도록 한다. 러시아나 몽골도 마찬가지다."

- 중국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이나 자칭린 상무위원의 방한 뒤 정치권에서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그런 면이 있지만 학자들을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학문적으로 타협은 없다. "

- 이미 언론보도 나왔지만 중국이 발해 유적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는데.

"그렇게 할 것으로 예측을 하고 있다. 160년 동안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를 중국식으로 복원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가 큰 걱정이다. 북한학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

- 최근 고구려사에 관한 열풍이 식고 각종 국가고시 등에서 국사가 별 대우를 못받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것은 국민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정책적으로 고려할 문제다. 국민들이 지금처럼 국사에 대한 열망을 품었을 때 정부가 다양한 의견을 조정해 국사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사는 개인의 전공 차원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이 문제가 되니까 올바로 성장해야할 학문이다."

- 역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오시면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실천한 다음에 말을 한다. 역사를 연구할 때도 반드시 현장을 답사하고 글을 쓴다. 외국을 직접 방문하는 등 현지를 직접 조사하는 것이 학문의 도리다. 중국격언에 '일은 많이 하고 말을 적게 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것을 중요시한다"

- 끝으로 고구려 연구재단 이사장으로서 국민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간 우리 국민들이 우리 역사를 사랑해온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런 역사의식과는 별개로 해외에서도 국제신사답게 행동해야 한다. 불필요한 행동을 하면 상대방이 오해를 하고 그것이 쌓이면 다른 면으로 표출돼 엉뚱한 문제를 만든다. 앞으로 (중국과)왕래가 더 잦아질텐데 불필요한 언행은 삼가는게 좋다고 본다."

(오마이뉴스 / 김태경 기자 2004-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