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고정관념 깨고 싶었죠"

"번역본은 물론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창작물로 봐 주세요.”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 내놓는 작품마다 평단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가 장정일 씨(42)가 5년 간의 공백을 깨고 소설 '삼국지'(전 10권ㆍ김영사 펴냄)로 돌아왔다. 하지만 장정일 '삼국지'는 이문열, 황석영, 조성기, 김홍신 등 쟁쟁한 작가들이 펴낸 전작들과는 구별되는 점이 많다.

장씨는 "기존 선배들의 삼국지가 나관중 본이나 모종강 본 삼국지를 운운하는 번역판인 데 반해 내 삼국지는 철저한 역사고증과 자체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만든 새 창작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ㆍ로마 신화가 후세 여러 명의 저자들이 나름대로 해석해 책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삼국지도 일정한 원저자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며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허구”라고 말했다.

장씨는 이번 소설에서 기존 삼국지의 철저한 중화주의를 배척해 냈다. 그는 " 등장인물 중 유비를 선인, 조조를 악인으로 구분해 온 것 자체가 나관중과 모종강이 구축해 놓은 중화주의와 춘추사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내 소설에는 모든 인물에 대한 선악 평가를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고 밝혔다.

특히 장씨는 "군담역사소설로 대표되는 삼국지는 남성중심의 우월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표적인 고전으로 자리잡아 왔다”며 "여성 독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도록 내용을 수정한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그 예로 유비의 첫 아내 감부인이 관우에게 황건군의 수용을 적극 권유하는 대목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 나관중 본에는 철저하게 누락된 것으로서 여성 등장인물의 내용 참여도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장씨는 "삼국지는 외교, 국방, 문예뿐만 아니라 심지어 요리, 의료에 관한 내용도 전개하고 있어 그만큼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며 "삼국지를 읽은 사람 이면 누구나 '할 말'이 많아진다는 게 삼국지의 가장 큰 장점인 것같다”고 말 했다. 그는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쓰일 삼국지에 대해서도 바라는 점을 밝혔다. 장씨는 "삼국지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고구려 등 중국 주변 민족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며 "삼국지가 중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무대로 하는 광활한 역사소설로 재탄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 서진우 기자 200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