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릉이 광개토대왕릉 아니다"

중국은 ‘지안 고구려왕릉’ 발굴 보고서에서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하는 태왕릉과 장수왕릉으로 보는 장군총 일대의 발굴 성과를 자세히 기록했다.

새로 확인한 유물 가운데 주목할만한 것은 무덤 주변에서 제단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는 돌판을 확인한 것과 태왕릉에서 ‘호대왕(好大王)’ 명문이 새겨진 청동방울을 발견한 것이다.

중국 학계는 특히 청동방울의 발굴을 무덤 주인을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27일 고구려연구회 학술발표회에서 한ㆍ중ㆍ일 3국에서 거의 정설로 굳어가는 ‘태왕릉=광개토대왕릉’ ‘장군총=장수왕릉’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교수는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우선 태왕릉이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되는 청동방울의 ‘호대왕’ 명문이 광개토대왕 이전 미천왕 때부터 왕에 쓰던 일반 명칭이라고 주장했다.

미천왕, 문자명왕, 양원왕에게 똑같이 ‘호왕(好王)’이라는 칭호를 썼고, 1900년대 초 프랑스, 일본 학자들이 장군총을 조사할 때도 무덤 내에서 ‘호태왕’이라는 위패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글자체가 왕과 관련한 국가기관의 작품치고는 너무 치졸한데다, 중국 현지 전문가들이 출토지점을 사람에 따라 따르게 말하는 점도 진위를 의심케 한다”며 “태왕릉 부근 딸린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태왕릉은 광개토대왕비에서 360㎙ 떨어져 왕릉급 무덤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비석이 무덤의 뒤쪽에 있다는 점 때문에 국내와 일본에서 광개토대왕릉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이 교수는 이에 더해 태왕릉이 장군총에 비해 4배나 큰 데도 관이 있는 현실은 장군총의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체격이 큰 광개토대왕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태왕릉이 백제군과 싸우다 전사해 시신을 건지지 못한 고국원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며, 정작 광개토대왕의 무덤은 광개토대왕비와 두번째로 가까운 대형 무덤으로 비석 방향으로 무덤 정면이 나있는 장군총이라고 주장했다.

또 장군총이 태왕릉보다 후대의 양식이며 관대의 길이가 3.2㎙에 이르는 점, 광개토대왕비에 광개토대왕의 무덤을 고지에 있는 ‘산릉’이라고 설명한 점, 장군총 내에서 ‘호태왕’ 위패가 발견된 점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리고 고국원왕릉 가까이 광개토대왕비를 배치한 것은 백제를 정벌한 광개토대왕이 할아버지의 원한을 갚았다는 것을 천명하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했다.

(한국일보 / 김범수 기자 200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