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대첩 `薩水'는 中초자하" <北방송>

북한 평양방송은 21일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612년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의 `살수(薩水)'는 중국 요동반도 대양하(大洋河)의 큰 지류인 초자하(哨子河)라고 주장했다.

방송은 "수나라 군대는 압록수 즉 중국의 태자하(太子河, 비류수)를 건너 침공해 왔다"며 "을지문덕 장군의 유인작전에 의해 살수 서쪽까지 끌려온 수나라 군사들은 장마철에 물이 불어난 살수 즉 오늘 중국에 있는 대양하의 큰 지류인 초자하 기슭에서 몰살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지난 시기 살수대첩을 오늘의 우리나라 청천강에서 있었던 대승리로 간주하여 왔는데 이것은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사대주의적 입장에서 우리측 기록은 버리고 자치통감, 수서 등의 다른 나라 기록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은 살수가 청천강이 될 수 없는 근거로 "고구려군이 요동성을 비롯한 요하 동쪽의 기본 전선에서 완강한 방어전을 벌이고 있었고 기본전선의 한 모퉁이도 돌파하지 않았던 정황에서 비행기나 탱크와 같은 현대적 군사기술 기재도 없던 당시에 고구려 후방 깊이 천수백리나 되는 수도 평양성까지 30여만의 군대를 별동대로 들이민다는 것은 군사학적으로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가지로는 요동성에 자리잡고 있던 수양제가 7월 24일의 패전 소식을 들은지 하루만인 7월 25일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총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청천강일 경우 그 거리가 1천리가 넘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

방송은 "말을 타고 달려도 하루 동안에 왕복 2천여리를 도저히 달릴 수 없다"며 "수양제가 그 다음 날로 보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압록수를 건넌 적군이 한 200여리 더 가서 25일 안으로 당도할 수 있는 거리에 그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요동성과 살수 사이의 거리는 몇백리 안팎이었으며 따라서 살수는 청천강이 아니라 중국의 초자하라는 것이다.

북한 역사학자들은 수나라가 쳐들어온 평양은 현재의 평양이 아니라 단둥(丹東) 위에 있는 봉황성이며,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뒤 압록강 이북을 통치하기 위해 봉황성에 북평양을 설치하였는데 수나라가 쳐들어온 것은 바로 북평양이고, 수나라 군이 도망가다 만나는 첫번째 강은 초자하라고 일관되게 논리를 펴고 있다.

청천강 설은 "평양까지 쳐들어왔던 수나라 군사가 도망가다 처음 만나는 큰 강에서 을지문덕 장군한테 몰살한다"는 역사 기록을 근거로, 수나라의 침공을 받은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라면 살수는 청천강이라는 해석에서 나왔다.

국내 일부 학자들은 살수를 중국 허베이(河北)성 칭하이(滄海) 서쪽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연합뉴스 / 왕길환 기자 2004-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