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중국 역사는 '고무줄'?

지난 9월 중순 아차산 고구려 보루. 고구려연구재단이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마지막 일정은 보루 답사였다. 여기에서 중국학자 쑨진지(孫進己)와 자연스럽게 아차산을 둘러싼 '한-중 학술토론'이 벌어졌다. 공격과 방어, 설전에 설전이 오갔다. 일흔을 넘긴 백발의 노인은 앉아서 얘기하자는 예의성 권유를 뿌리치고 조금도 지지 않으려는 기세로 말을 이어갔다. 노기 어린 백발 노인의 상기된 표정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고구려사 왜곡이 하루 아침에 포기되거나 취소될 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무엇이 과거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양국의 두 학자를 이토록 다투게 하였을까? 한-중 양국의 역사논쟁은 현재의 중국이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고, 한족(漢族) 뿐만 아니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고구려의 영토가 한반도와 중국 동북 3성 지역에 걸쳐 있었고, 고구려가 중국 영토 안에서 건국되었다가 멸망하였으므로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사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측의 주장은 현재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할 때만 가능한 설명이다. 고구려가 있던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고구려의 영토는 중국 영토의 일부가 아니었다. 따라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넣어 설명할 수는 없다.

중국사에 넣을 수 없는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려고 하니 그때부터 역사왜곡이 시작된다. 현재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일사양용(一史兩用)'이라 하여 압록강 이북의 고구려 역사는 중국사에 속하고, 압록강 이남의 고구려 역사는 한국사에 속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1980년대 중반에는 특별한 언급도 없이 고구려를 중국고대동북의 소수민족정권 혹은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 규정하기 시작했다.

역사왜곡의 시작 '일사양용'

이러한 성격 규정은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따른 것으로 고구려가 현재의 중국 영토상에 있던 고대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으로서는 현재의 중국영토 밖에서 전개된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사로 설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중국은 고구려가 역대 중국 왕조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은 기록을 근거로, 이를 실질적인 '신속(臣屬) 관계'로 해석하여 압록강 이남에서 전개된 고구려 역사까지 중국사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고구려 왕이 중국의 지방관직을 제수받은 기록을 근거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주장도 그런 논리에서 비롯된다.

이는 현재의 중국영토 밖에서 일어난 역사를 중국 역사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기에 애초에 현재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해서 제기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과 맞지 않는다.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수습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중국은 진(秦)나라 이후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였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라 고구려는 현도군 내에서 건국되었고, 멸망할 때까지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를 성립시키고 있다. 고구려가 현도군 내에서 건국되었고, 한사군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주장도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한대(漢代)를 기준으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주장함으로써, 역사를 논하는 기준시점이 필요에 따라 옮겨가는 현상, 다시 말해 논리적 일관성의 상실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측이 논리적 일관성마저 결여한 억지 주장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구려 당시에는 물론이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도 1,300년 동안 고구려사가 중국사에 속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고구려사가 중국사라고 억지 주장을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1998년 12월 장춘 동북사범대학에서 개최된 '중국동북지방 사학학술토론회'에서 고구려사 뿐 아니라 고조선사까지 중국사에 속한다는 일치된 인식을 얻은 후에 중앙정부에 연구비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것이 중앙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2002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었다. 이 동북공정을 결제한 인물이 바로 후진타오(胡錦濤) 현 중국 국가주석으로 알려져 있다.

40년 전에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총리는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사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불과 40년 사이에 중국 최고지도자의 생각이 바뀐 것은 저우언라이와 후진타오 두 사람의 개인성향이 달라서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현재의 중국 최고지도자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역사,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라고 지시한 데에는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실의 문제가 깊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현실은 다름 아닌 한반도의 상황 변화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수많은 조선족이 한국을 찾았다. 북한의 경제위기 심화로 탈북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탈북자의 증가는 북한체제 붕괴의 징조일 수도 있다. 북한체제가 붕괴되어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면 조선족이 대거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올 것을 예상할 수도 있고, 북한 지도층이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도피하는 사태도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에 영향을 받은 조선족이 들고 일어나면 동북 3성 지역이 심각한 혼란에 빠질 뿐 아니라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체제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북한정권이 갑자기 붕괴되었을 때에도 한국정부와 미국이 북한지역을 그대로 접수하여 흡수 통일하도록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도 중국측으로서는 고민일 것이다. 한반도가 평화통일이 되더라도 통일한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대결구도가 형성될 것도 명백해 보인다.

동북아 패권 노린 승부수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동북공정이고, 그 프로젝트 안에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는 과제가 들어 있다. 고구려사 편입 문제가 크게 힘을 얻게 된 것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정치적 의도와 1980년대부터 고구려사가 중국사임을 주장해온 쑨진지 등 중국 동북지역 학자들의 영향력 확대 의도가 상호 맞아떨어져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게 된 결과다.

따라서 최근 한-중간의 고구려사 논쟁은 중국 학자들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연구를 진행하도록 승인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베이징 고위층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그에 따라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한반도 통일전략과 동북아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한-중 양국간 고구려사 논쟁은 과거의 역사논쟁 차원을 넘어 우리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는 미래의 외교 전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인철 /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뉴스메이커 2004-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