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고구려 여인들은 어떻게 살았나

평강공주는 고구려 제25대 평강왕(평원왕, 재위 559~590년)의 딸이다. 우리 머리 속에 이 공주는 '바보 온달에게 시집간 울보공주'로 자리하고 있다. 바보 온달을 빼고는 평강공주를 생각할 수 없다. 그녀는 온달을 통해 역사책에 남게 되었고, 그를 통해 우리 기억에 남게 되었다. [삼국사기] 열전에도 평강공주전이 아닌 온달전이란 형태로 실려 있다. 열전의 이름 그대로라면 평강공주는 주인공이 아니라 온달의 아내로 등장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막상 온달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야기의 중반까지는 오히려 온달이 아닌 평강공주가 중심인물임을 알 수 있다. 어릴 때 너무 울어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겠다"는 꾸지람을 들었으며, 나이 16세가 되어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나 말을 듣지 않으니 왕이 노해 "명을 따르지 않을 거면 나가라"고 하여 정말 궁궐을 나가 온달 집으로 찾아갔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온달과 그 어머니가 너무 격에 어울리지 않는 상대여서 거부했지만 끈질긴 설득으로 끝내 결혼하게 되고 그뒤 금팔찌를 팔아 농토와 노비-우마-기물 등을 사들였다는 얘기들이 모두 평강공주 중심으로 펼쳐진다.

온달이 주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야기 후반부다. 낙랑언덕 사냥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후주(북주)의 랴오뚱 침략시 선봉장이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왕이 비로소 사위로 인정했으며, 양강왕(영양왕, 재위 590~618년) 때에 신라와 치른 전쟁에 나가 싸우다 전사했다는 부분에서 온달의 활약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연은 온달, 조연은 평강?

그러나 설화의 대미는 다시 평강공주가 장식한다. "계립현과 죽령 이서의 땅을 되찾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전쟁에 나갔던 온달이 아단성 아래에서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상여가 움직이지 않아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고 했다. 그러자 드디어 관이 움직여 장사를 지낼 수 있었고, 대왕이 이를 듣고 몹시 슬퍼하였다. 이것이 설화의 끝부분이다.

설화에서 차지하는 양이나 비중에서는 물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보아도 이 설화는 온달전이라기보다 평강공주전이라 해야 옳을 듯하다. 그런데 왜 제목과 이야기가 살짝 비틀리게 되었을까?

설화에 따르면 평강공주는 자기 주관이 매우 뚜렷하고 고집도 센 여인이었다. 어릴 때 왕이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겠다고 농담할 정도로 많이 울었다는 사실에서 이미 그 성격의 일면이 엿보인다. 그녀는 겨우 16세의 나이에 한 나라의 국왕이기도 한 아버지의 명을 끝내 거부하고, 혈혈단신 궁궐을 나와 온달의 집을 찾아가 결혼을 청했다. 뿐만 아니라, 온달이 혼인 요청을 거부하자 그 집 사립문 아래에서 자고, 이튿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온달과 그 어머니에게 거듭 요청해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정도로 자아가 강한 여인이었으며, 뜻이 관철될 때까지 밀고나가는 추진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현숙 /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뉴스메이커 2004-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