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ㆍ중ㆍ일의 연결고리 주사(朱砂)

중국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 마왕퇴(馬王堆) 고분군 중 1972년 1-4월 발굴된 제1호분은 완벽에 가까운 미라 상태로 출토된 여자 시신과 그의 관을 덮었던 T자형 명정(銘旌)인 채색 백화(帛畵)가 특히 유명하다.

기원전 2세기 초반 전한(前漢)시대 무덤으로 밝혀진 이곳에서는 관 주위로 1만 근에 달하는 숯을 쏟아 부어 습기를 차단한 데다 석고 반죽으로 주위를 봉함으로써 바깥 공기가 유입됨을 막았다. 시신이 완벽한 상태로 출토된 까닭이다.

이 관 속에서는 다갈색 액체가 약 80여㎏이나 확인됐다. 실험 결과 에틸알콜 0. 11%, 초산 1.03%가 함유된 주사(朱砂), 즉, 황화수은(HgS)으로 밝혀졌다.

일본 우메하라고고연구소가 1960년에 나라(奈良)현 덴리(天理)시 야나기모토초( 柳本町) 소재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인 야마토텐진야마(大和天神山) 고분(총길이 1 13m)을 발굴한 결과 무덤방 바닥에서 무려 41kg에 달하는 주사가 확인됐다.

1998년에는 같은 지역 다른 전방후원분인 구로쓰카(黑塚) 고분(총길이 127.5m) 조사에서도 삼각연신수경(三角緣神獸鏡)이라고 일컫는 고대 일본열도 특유의 동경( 銅鏡) 32점과 함께 목관 바닥에는 주사가 그득히 출토됐다.

한데 같은 현상이 한반도에서도 연이어 확인되고 있다.

시신을 안치한 곳 주위로 주사를 그득 칠한 대표 고분으로는 4-6세기 지금의 경 주 시내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대형 적석목곽분을 들 수 있다.

1973년 조사한 천마총과 이듬해부터 75년까지 대대적으로 조사된 현존 한반도 최대 규모 무덤인 황남대총 남분과 북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1994년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황남대총 남분 발굴조사보고서'에 서는 "바닥 판재의 윗면과 뚜껑 판재의 아랫면에는 전면에 단칠(丹漆)이 돼 있어, 이 외관의 내면은 모두 단칠돼 있었던 것으로 판단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식민지시대에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경주지역 적석목곽분에서도 같 은 현상이 관찰됐다. 심지어 어떤 고분에서는 붉은 물감을 양동이로 퍼다가 쏟아부 었다고 할 만큼 막대한 단칠 물감이 출토되기도 했다.

적석목곽분에서 확인된 이들 단칠(丹漆)이 곧 황화수은(=주사)임은 천마총 발굴 조사에서 밝혀졌다.

더욱 특기할 사실은 이런 `주칠고분'이 한반도 남부 전역에 걸쳐 잇따라 확인되 고 있다는 점이다.

영산강 유역에 산발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광주 명화동 고분이나 해남 장산리 고 분 등의 소위 전방후원분은 거의 예외없이 무덤방을 주사로 발랐으며, 최근 동아대 박물관이 조사한 6세기대 고성 송학동 고분에서도 그 뚜렷한 흔적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5세기 말-6세기 초반 신라계 무덤으로 간주되는 창녕 송현동 고 분군 중 제6호분 현실 또한 온통 벽면을 주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무덤 혹은 주검과 함께 하는 이런 주칠(朱漆)이나 주사(朱砂)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적어도 국내에서는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천마총이나 황남대총 발굴보고서에서는 이런 주칠이 모종의 의식과 관계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불가지(不可知)'로 처리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주사를 무덤에 쓰는 전통이 한ㆍ중ㆍ일 고대에 공통적으로 확인된다는 점에서 이런 매장 양식이 어떤 공통적 문화 양식에 기반하고 있음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주목을 요하는 것이 수은이 주성분을 이루는 주사가 실은 도교신학 에서는 선약(仙藥) 중에서도 가장 약효가 뛰어난 약물로 간주됐다는 사실이다.

동진시대 저명한 도사 갈홍(葛弘)이 쓴 도교경전 `포박자'(抱朴子)라든가, 양( 梁)나라 때 도교교단의 최고 지도자인 도홍경(陶弘景.456-536) 불후의 저작인 `진고' (眞誥) 등에는 한결 같이 금과 은, 운모(雲母), 웅황(雄黃. 비소)와 함께 주사를 선 약 중에서도 상약(上藥)의 첫머리에 거론하고 있다.

무덤에서 출토되는 주사가 도교신학과 밀접하다는 사실은 이것이 확인된 신라 적석목곽분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다량의 운모(雲母)를 동시에 출토하고 있다는 점 에서 명백하다.

주사-운모가 세트를 이루어 무덤 부장품으로 매장된 양식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 시대 중국과 일본열도에서도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고고학적 조사 성과는 적어도 한반도의 신라를 기준으로 할 때 적석 목곽분이 축조되던 4-6세기 무렵, 한ㆍ중ㆍ일이라는 드넓은 동아시아 지역 저변을 관통한 거대한 저류적 흐름이 도교(道敎)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로 볼 때 주사를 무덤에 바른 까닭은 사자(死者)가 저승에 가서도 영원한 삶 을 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됐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요컨대, 죽어도 죽지 않는 불로영생(不老永生)의 보증수표가 주사와 운모였던 것이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