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남북경협은 '북한공정' 막는 대안

통일의 서광인 듯 우리 모두를 흥분하게 했던 2001년 6·29 남북정상회담 효과도 반짝, 지금 남북 관계는 혼돈과 단절로 위기를 겪고 있다. 북한은 올 7월부터 넉달째 남북관계를 차단하고 새로운 경제 파트너로 중국을 선택해 북·중 경협을 확대하고 있다.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중국인 관광객 수십만명이 매년 북한을 넘나들고 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은 평양 제일백화점을 인수하고 2만평에 달하는 북·중 비즈니스 센터와 판유리공장을 건설, 접경도시 개발을 통한 북한의 개방을 지원하며 북한경제를 지배하려는 책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 부와 정치적 역량을 앞세워 사실상 ‘북한공정’을 시작한 셈이다. 이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북한의 붕괴에 대비한 정치·경제적 지배권 확보다.

지금 남북 관계는 핵 문제와 애매한 국제법, 남남 북북의 갈등으로 혼미 상태에 있다. 우리는 남북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몇 번의 좋은 기회를 잃었다. KEDO를 통한 핵문제 해결 실패는 금강산 관광사업의 성공에도 불구, 남북경협의 대안인 개성공단 사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남북 경협은 한두 가지 대형 프로젝트에만 매달려 있을 뿐이다. 그간 북한에 진출했던 중소기업 800여곳 대부분이 실패했고 단 한 개의 기업도 평양에 상주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단순 임가공 수준이고 그마저도 중국을 통한 우회적 임가공이 주를 이루어 속빈강정인 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 같은 미미한 실적보다는 기업들의 대북 투자에 대한 기대감 상실과 불신이 아닌가 한다.

북한은 남북경협의 기대를 접고 사실상 중국의 동북공정에 합류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고구려 역사 왜곡에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은 새로운 허니문을 준비하고 있다. 만약 중국의 의도대로 북한 경제가 중국에 종속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좌우할 여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첫째, 자칫하다가는 중국과 미국 일본 등 강대국의 경제 충돌지점의 칼끝에 서서 빠져나올 수 없는 올무에 걸려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우리 민족은 또 다시 끝없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아찔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 둘째, 중국이 북한의 경제권을 장악하게 될 경우 남한의 경제도 중국으로 빨려 들어가 경제 대란의 위기에 직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도움이 되어 줄 나라는 없다. 냉전이 끝난 지금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쓸데없이 남북의 갈등을 부추기거나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과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여는 일뿐만 아니라 새로운 남북관계를 개척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서 있다. 비방과 분쟁, 갈등과 분열로 모든 것을 잃었던 어두웠던 우리의 역사가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새로운 각오와 결단이 필요하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항의나 시위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역사는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중국의 동북부 개발이나 서부대개발 프로젝트 같은 국가적 사업에 관심을 갖고 고속철도나 원전건설 수주 등 미래지향적 한·중 관계를 설정해 나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제가 중국에 예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북의 개혁 개방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지원해야 한다. 민족의 숙원 사업인 통일 대업에 국가 예산의 0.3%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난과 피의 대가로 지켜온 이 땅을 생각하면 통일이라는 민족적 명제가 퇴색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임완근 남북경제협력진흥원장>

(전자신문 2004-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