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연재] 제자,스승에게 길을 묻다

문 "요즘 젊은이들에게 國史는 낯설기만 해요"
답 "어릴때부터 자기 역사에 자부심 갖게해야죠"

한영우(韓永愚·66) 한림대 특임교수는 국사학계의 4·19세대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명이다. 서울대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받았고 서울대 국사학과에 37년 동안 재직하며 규장각 관장, 인문대 학장을 역임했다. 조선 전기 사회사상, 조선시대와 근대의 사학사에 관한 많은 저서가 있으며 한국사 개설서로 ‘다시 찾는 우리 역사’를 펴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고(古)지도와 왕실 문화를 기록한 ‘의궤(儀軌)’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전호태(全虎兌·45)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1979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하면서 한 교수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을 거쳐 울산대에 재직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 ‘벽화여, 고구려를 말하라’ 등의 저서가 있다.

▲전=1960년대에는 유럽이 근대로 나아갔듯이 조선도 근대를 향해 나아갔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이른바 ‘우리 역사에서 근대로의 맹아 찾기’가 국사학계에서 큰 줄기를 형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조선 후기 실학에 관심을 보이시다가 조선 초기의 인물인 정도전 연구로 연구 시기와 방향을 바꾸셨지요.

▲한=저로서는 자연스러운 변화였습니다. 5·16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은 주체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민주’라는 개념을 불온하게 보려는 경향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역사에서 민족과 민주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전통은 적어도 조선 초기에 정도전이 적극적으로 제창한 민본사상(民本思想)과 주체적인 성리학 해석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보았어요. 그런 생각은 정도전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조선은 정치·사회적 도덕성을 매우 중시하던 사람들이 이끌어가던, 전근대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민본주의 국가였어요.

▲전=조선시대를 너무 미화하는 것 아닌가요. 일부에서는 국사학자들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어서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먼 주장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민족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탈민족주의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학계 일각에서 민족주의의 지나친 대두와 이로 말미암은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민족 해체’까지 주장한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어’ ‘국사’의 존재 가치와 의미, 이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까지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국사’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그렇게 국수적인가요. 오랜 시간을 두고 지역과 혈연,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형성된 ‘민족’이라는 실체를 굳이 부정하려는 이유를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극단적인 주장을 일삼으며 이웃 나라나 민족과의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국수적 민족주의는 배척되어야 하지만 민족이라는 엄연한 실체에 바탕을 둔 건전하고 개방적인 민족주의까지 해체와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요. 오히려 알게 모르게 우리의 현실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주의력을 흐트러뜨리는 세계화, 세계주의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화 정책이 우리의 생존과 충돌할 소지가 없지 않기 때문이지요.

▲전=그렇지만 세계화는 실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현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조선시대의 민본주의 전통, 여기에 바탕을 둔 국사 속의 민족주의적 흐름을 논하는 것이 낯설고 공허하게 비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한=그럴수록 성장하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적극적인 국사 교육이 필요합니다. 선진국들의 예를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단계에서 이미 자국 역사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역사 자료를 읽고 토론하게 할 정도인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조선시대는 건국 초기에 이미 민본주의적 전통을 수립하고, 영·정조 때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때까지 소민(小民)으로 불리던 일반 백성을 주체로 여기는 ‘민국(民國)’이라는 논의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선을 양반이라는 세습적 특권 계급이 대대손손 지배하는 바람에 사회 발전이 더디었던 봉건국가 정도로 알고 있지요. 조선시대 말기에 양반 사회는 이미 희석화 과정을 거쳐서 소민(小民)의 사회로 바뀌고 있었지요. 3·1운동 뒤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임시정부가 국호를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한 것도 영·정조시대에 이미 논의되었던 ‘민국’이라는 개념을 현실 역사화한 측면이 큽니다.

▲전=한국 사회가 새로운 세대에게 질적, 양적으로 의미 있는 국사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는 진지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 과정도 이와 관련하여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한=중국의 ‘동북공정’이 빚어낸 한·중 간의 역사 갈등은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중국이 잘못을 인정하고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 시도를 사과하고 철회해야 할 것입니다. 고구려사가 한국사의 일부라는 사실은 동아시아의 역사 전개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나니까요. 하지만 우리도 이와 관련해서 일정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만주를 지금 수복해야 할 영토인 것처럼 바라본 우리의 국수적 민족주의가 중국을 자극한 측면도 있으니까요. 이것은 바른 역사인식,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넓고 깊게 뿌리내리지 못했던 우리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된 면이 큽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그동안에도 충실치 못했던 우리의 국사 교육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당연히 국사 연구와 교육을 담당할 전문가 양성과 배출도 점점 기반이 좁아지고 있지요. 학계의 전문적인 학술 연구가 이루어져 그 내용이 해외에 널리 알려져야 할 단계인데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과 중국이 지나치게 자신들의 입장 위주로 정리한 역사, 한국사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와 내용을 담은 역사 연구 결과를 학술대회와 번역 사업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리는 동안 우리는 손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전=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역사학자는 사회의 움직임에 좀 더 깊숙이 개입하거나 현실을 향해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선생님은 40년 가까이 연구의 외길을 걸으셨지만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도 수시로 의견을 제시해 오셨는데요.

▲한=사회적 발언은 필요하겠지만 역사학자가 현안에 깊이 개입해 들어가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면 중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구에 두어야겠지요. 저는 나름대로 이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역사학자라도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사실 불가능에 가깝지요. 결국 어떤 입장에 서게 되고, 이해 당사자들 가운데 한쪽 집단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에 이르게 되니까요. 현실과 거리를 두는 학자층이 두터울수록 그 사회는 바탕이 튼튼하고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전=그 말씀을 들으니 선생님이 늘 강조하시는 ‘중용론’이 떠오릅니다. 과거사 청산 등의 문제로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긴장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은 없을까요.

▲한=지나온 역사에서는 계승할 것이 있고, 극복하고 정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접근할 사안과 적절한 시기가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에 ‘친일’행위를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광복 직후에 정치적 청산이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2세대 이상 지난 지금, 가능하고 의미가 있는 일은 친일 문제에 대한 학문적 접근입니다. 인적 청산의 시기는 이미 지나가 버렸거든요. 새로운 인권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정치적 접근은 자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문적 분석과 평가는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수 있겠지요. 과거사 청산이라는 명제는 그 자체로 타당하지만, 방식과 내용은 신중히 검토되고 선택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일보 200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