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개혁 무지개' 좇다가 나라가 흔들린 20개월 노무현 정권이 공식출범한 뒤 20개월은 파란·충돌·대립·갈등 ·분열의 연속이었다. 노 정권 임기 5년의 60개월 중 3분의 1이 지난 오늘 우리 앞에 놓인 노 정권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기불황, 주한미군 감축이 상징하는 한미동맹 재조율과 북핵문제에 따른 안보불안,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의 대혼란 등.

일제강점의 국치와 한국전쟁의 민족적 재앙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폐허였다. 이를 피와 땀으로 극복하며 국가적 골조들을 세우고 발전시켜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치르면서 세계인을 향해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나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우리의 국가적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 경제 , 외교, 안보가 근본부터 도전을 받으며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하루 하루 목격하며 살고 있다. 이런 질곡의 늪에서 개인은 개인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 한국인과 한국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오늘 문화일보 창간13주년을 맞아, 이런 국가적 위기가 노 정권 재임 20개월만에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은 노 정권의 분열적·정략적·근시안적인 국가경영에 그 원인과 배경이 있음을 거듭 밝히고자 한다. 현 정권은 마치 무지개를 좇아 뛰어가듯이 깃발을 세우고 질주하면서 국민에게 따라오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탈민족화, 세계화, 정보화의 시대감각을 익힌 국민의 다수는 근·현대사에서 정체불명의 깃발을 따라가다가 개인도, 나라도 파탄이 난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항하고 반대하고 있다. 개혁의 깃발에 국민이 안심하고 먹고 살면서 나라를 튼튼히 지킬 수 있는 방책들이 함께 있지는 않기 때 문이다. 또한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따라가다가 자칫 경제 ·외교·안보가 더 흔들릴 것 같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더 늦기전에 현정권은 정권과 국민, 지지세력과 반대세력간의 불화와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를 획기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문화일보의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 지지도가 24%로 떨어진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정권에 대한 지지 세력은 점차 소수화하고 있고, 그러면 그럴수록 정권은 지지세력 만을 결집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통계적 입증이다. 국가지도력의 지지기반 유실이 헌정불안을 더 키우고 있다.

노 대통령은 순리와 정도에 따라 국민 대화합 조치를 취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결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의 여운을 남기지 말고,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화합을 위한 당위적 선택이다. 국보법 폐지, 신문법, 과거사 규명법, 사학법 등 국민을 편가르고 있는 4 대법안도 국회에서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국민이 정부와 함께 경제·안보 회생에 전심전력할 계기가 열릴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마음을 비우고 발상을 새로이 해야 한다. 개혁의 깃발에 탈이념, 탈폐쇄주의의 성격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념갈등과 국론분열을 막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과 정권이 새로운 통합의 깃발 아래 다시 뭉쳐 국가적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反기업정서 차단해야 꿈 이룰 수 있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오늘 창간 13주년을 맞아 우리는 이 명제를 거듭 강조한다. 기업의 의욕이 지금처럼 움츠린 상황에서는 선진사회의 꿈도, 강소국(强小國)의 꿈도 허망하다는 것이 우리의 절박한 인식이다.

정부는 조만간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재정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연기금 등 민간자본을 무려 7조~8조원이나 투입한다. 그런데 이런 야심찬 경기대책이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 4%대를 5%대로 1%포인트 끌어올리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믿어지겠는가.

물론 1%포인트라도 높여보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하지만 주변국들의 성장률 추이와 비교해 본다면 현정부가 얼마나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서 아시아 경쟁국중 최하위권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2·4분기 성장률이 5.5%인데 비해 싱가포르는 12.5%, 홍콩은 12.1%로 우리보다 2배 이상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 대만 역시 7.7%였다. 이런 추세는 내년에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는 게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하지만 기업으로 눈을 돌리기만 하면 경제를 살릴 방법은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우리 기업들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현금이 6월말 기준으로 무려 44조원에 이른다. 이 막대한 자본을 투자로 돌릴 수만 있다면 내년도 전망치 3~4%대보다 훨씬 높은 8~9 %대까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의 투자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라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부여당측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 주체는 어차피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가계와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데 정부 혼자 나서봐야 자칫 일본정부의 ‘잃어버린 10년’을 되풀이할 뿐이다. 가장 먼저 기업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환경의 조성을 바라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치가 권력욕구에 의해 움직이듯 기업은 이윤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법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기업의 이윤동기를 자극하는데 집중돼야 한다. 투자수익에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갖가지 정부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고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하게 확산되고 있는 반(反)기업정서를 차단해야 한다. 또한 경제전문가의 70% 가까이가 현 정권의 경제정책을 좌 편향으로 인식한데 대해 정부여당은 커다란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다음으로는 기업활동을 옥죄면서 외국자본에 비해 국내기업을 역 차별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와 대기업그룹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등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사회를 분열과 대립으로 몰고가는 정치·이념적 문제 역시 기업과 소비자들로부터 활력을 앗아가는 요인들이다. 그만큼 현 경제위기 상황은 상당부분이 참여 정부 출범 이후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시중에 나도는 ‘정치발(發 ) 불황’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반기업정서나 규제가 계속되는 한 기업활동은 위축되고 덩달아 일자리는 해외로 떠나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이윤추구 활동을 보장하고 자극함으로써 고용은 늘고 사회는 풍요를 누리게된다.

이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문화일보 2004-11-1)

취업전쟁에 지친 그들…20代 노숙자 쏟아진다

“직장이요? 갖고는 싶지만 이 생활에 너무 젖어버려 이제는 일할 자신도 없어요.”

거리의 네온사인이 제법 밝아진 1일 오후 6시30분. 서울 영등포동 롯데백화점 뒤편 어두운 골목안 노숙인 쉼터 ‘샤론하우스’에서 만난 박모(27)씨는 서둘러 영등포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군 제대후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모은 돈을 떼인 이후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 김씨의 유일한 낙은 영등포역과 그 인근을 돌아다니는 것. 김씨는 오후 늦게 일어나 점심겸 저녁을 먹은 후 밤새 영등포역에서 노숙자들과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오전에야 다시 쉼터로 향하는 생활을 1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장기 불황 속에 직업을 구하지 못한 20대 청년들이 최근 스스로 쉼터를 찾는 등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달 31일 밤 8시30분 ‘e-열린공동체’의 거리배식이 진행된 영등포동 롯데백화점 앞. 400여명의 노숙인들이 저녁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줄을 늘어선 가운데 머리에 염색을 한 20대 노숙인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들은 비교적 깨끗한 차림이었지만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재빨리 밥을 먹고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매주 수?일요일 이곳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박희돈(49) 목사는 “젊은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밥을 얻어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 부쩍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20대 노숙자들은 영등포뿐만 아니라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서울역이나 을지로,미아리 등 시내 곳곳에서 심심찮게 눈에 띈다.

실제로 서울역 노숙인상담소의 경우 9월 상담 노숙인 25명중 20대는 1명(4%)에 불과했지만 10월 들어서는 51명중 8명(16%)으로 증가했다. 영등포역 상담소도 9월엔 43명 중 2명(5%)이었으나 10월 들어서는 26명 중 3명(12%)을 차지했다. 노숙인 지원단체 등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20대 노숙자들이 대략 1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 대학 유도학과를 졸업하고 제주도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한 김모(25)씨는 지난 4월 돈을 벌어보겠다며 서울에 올라왔지만 지금껏 마땅한 직업도 없이 영등포역과 ‘드롭인센터(노숙인 임시보호소)’를 전전하고 있다.

스포츠마사지 1급, 생활체육지도자 2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다 전공도 유도여서 경호업체 등 여러곳에 이력서를 내기도 했으나 면접 연락조차 없는 사회의 냉랭함에 지금은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다.

김씨는 “가끔 들어오는 건설 노동일을 하기도 하지만 하루 뼈빠지게 일한 일당 5만4000원으로는 자립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거리에 보면 나처럼 노숙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취직을 못해 나왔다고 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국민일보 / 최정욱 기자 2004-11-1)

대학생은 굶고, 강남도 집세 못내

장기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초·중·고교생뿐 아니라 대학생마저 밥을 굶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아파트 관리비 미납은 더 이상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임대주택만의 사정이 아니다.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촌에서도 관리비를 내지 못해 쫓겨나야 하는 암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 대학생도 끼니 걱정 =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대학측이 마련한 무료급식 프로그램에 신청자가 쇄도하고 있다.

1일 연세대에 따르면 이 대학 부설 대학교회는 최근 생계가 어려운 학생에게 매월 지급해오고 있는 학생식당 식권 수급 대상자를 35명에서 40명으로 늘렸다.

최근 어려워진 경제사정 등으로 끼니 해결이 어려워진 상담자가 부쩍 늘어났지만 한정된 예산 때문에 고작 5명분밖에 지원 대상자를 늘리지 못해 안타깝다는 것이 이 학교 대학교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학교회 관계자는 “이번 학기에는 한 단과대에서만 무려 20명으로부터 ‘식권을 달라’는 신청이 들어온 적 있었다”며 “학비는 물론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학생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이 대학 홍복기 학생복지처장은 “부모가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숙식마저 해결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며 “장학금 형식의 식비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통적으로 지방 출신의 학생이 많은 고려대도 2002년 3월부터 ‘교내시설 모니터링단’이란 이름으로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을 모집해 하루 3,000원짜리 식권을 제공하고 있다. 학교측은 “이번 학기에는 지난 학기보다 다소 많은 70여명이 신청했으며, 이들은 한달에 한차례 보고서를 내면 그 대가로 식권을 지급받게 된다”고 말했다.

지방 출신의 자취생에게 한달에 2차례씩 무료 저녁급식을 하는 성공회대에서도 이용학생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00년 50명으로 시작된 저녁급식 대상자가 올해는 100여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이다.

◇ 강남도 아파트 관리비 체납 = 겨울철을 앞두고 아파트 관리비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나앉아야 할 처지에 놓인 가정이 급증하고 있다.

1일 수도권의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ㅇ회사에 따르면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총 2,002가구)에서는 지난 8월 현재 아파트 관리비를 체납한 가구가 무려 4가구 중 1가구꼴인 24.9%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9월의 12.0%에 비하면 2년여 만에 2배 이상 늘어난 비율이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총 820가구)는 지난 9월 현재 아파트 관리비 체납 가구가 22.1%로 지난해 9월의 13.4%에 비해 크게 늘었다.

ㅇ사 관계자는 “수도권 대부분의 아파트단지가 체납률이 두자릿수”라며 “겨울철을 앞두고 난방비 등이 많이 드는 시기임에도 관리비가 걷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서울 강남지역도 미납률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예외가 아니다. 대규모 아파트촌인 송파구 잠실 ㅈ아파트의 경우 지난 8월 현재 관리비를 내지 않은 가구가 8.8%다. 2002년 9월의 5.3%에 비하면 큰 폭으로 높아진 것이다.

강남구 수서동의 한 아파트에 살면서 관리비를 5개월째 내지 못한 이모씨(47)는 “사업이 부도가 나 먹고 살기조차 어려워졌다”며 “전기 공급이 중단되고 난방이 끊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임대아파트는 사정이 더욱 딱하다. 경기 ㅌ임대아파트(총 593가구)는 지난 8월 현재 미납률이 무려 66.9%다. 2002년 9월의 31.0%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다. 또 경기지역 ㅅ임대아파트(총 330가구)의 경우 지난 8월 미납률이 67.2%로 2002년 9월의 30.2%에 비해 역시 2배 이상 큰폭으로 늘어났다.

이 임대아파트의 한 주민은 “입주 가구가 대부분 영세민들로, 정부 보조금 이외에는 별다른 수익이 없어 불황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서민 생계마련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경향신문 / 오승주·장관순·이지선 기자 200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