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존 던컨 교수 “지금은 反美아닌 用美할 때”

한국에서 ‘한국’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릴 때마다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한국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존 던컨 교수(59·사진). 미국 내 최대 한국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그는 지난달 고구려연구재단이 개최한 제1회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고구려사는 한국사’라는 입장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가 28, 29일 ‘한국인의 정체성: 과거와 현재’를 주제로 연세대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다시 한국을 찾았다. 27일 그를 만나 중국의 역사침공에 직면해 있고 다른 한편으론 반미주의 목소리가 드높은 한국 상황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1960년대 주한 미군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고려대에서 한국역사를 공부했던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의 반미주의를 이해할 수 있다”며 “요즘 미국을 좋아하는 나라도 있느냐”는 농담까지 던졌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좋지 않은 동네에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좀더 냉철한 자세를 당부했다.

“제가 한국인이라면 중국을 더 경계하겠습니다. 중국의 부상은 경제적으로 한국에 커다란 도전이 될 뿐만 아니라, 중국이 패권주의를 추구할 경우 바로 옆에 붙어있는 한국의 상황이 어려워질 겁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의 사대(事大)외교책을 ‘형편없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현대적 시각일 뿐입니다. 현실적으로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어떻게 생존이 가능했겠습니까.”

던컨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서구에서는 민족주의가 폐기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유효기한이 남아 있다며 그 민족주의가 “반미(反美)가 아닌 용미(用美)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 내 한국학 전공자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강경으로 흐르자 2년 전 ‘한국을 염려하는 학자들의 연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지난해 스탠퍼드대 컬럼비아대 UCLA 등에서 ‘코리아 데이’ 행사를 갖고 간담회 개최, 언론 투고 등을 통해 한국의 상황을 미국 내에 올바로 알리는 데 주력했다.

던컨 교수는 “이런 활동을 통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많이 완화됐다”면서 “이라크 문제도 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김정일의 도발이 없는 한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현 기조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학 수요는 계속 늘고 있지만 최대 강좌를 자랑하는 UCLA의 한국학연구소는 재원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년에 200만달러의 연구소 운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4-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