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깨는 중국, 두려움에 떠는 유럽

부러움-시기심 섞어 새로운 초강대국 탄생 주시

이미 200여년 전에 나폴레옹은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면 세계가 뒤흔들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대체로 90년대 중반부터 온 세계는 중국의 급성장과 미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유럽의 강대국들도 예외 없이 경탄과 부러움, 그리고 가끔은 질시의 눈으로 아시아의 새로운 초강대국의 탄생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럽의 언론에서 중국의 급성장과 장래를 이런 저런 시각에서 다룬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최근호에서 다시 한번 ‘중국, 세계 초강대국의 탄생?’이란 표제의 커버스토리를 실어 눈길을 끌게 했다.

이 기사는 흑룡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러시아의 블라고베쉬첸스크와 중국의 하이헤라는 두 조그마한 도시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기사에 의하면 블라고베쉬첸스크는 극심한 경제의 침체 상태 속에서 일자리를 잃은 도서관 사서나 교사들조차도 식당종업원이나 청소부로 일하기 위해 매일 중국땅으로 강을 건너야 한다. 반면에 중국쪽의 하이헤 사람들은 번성하는 중국 경제 덕분에 러시아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돈을 벌기 위해 오히려 강을 건넌다. 러시아땅에 공장을 짓고 블라고베쉬첸스크에서 유일하게 번창하는 산업인 매춘의 고객으로서, 말하자면 해외 섹스 관광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번창하는 중국 경제의 지표들로서 ‘슈피겔’이 제시하는 몇몇 수치들을 살펴보자. 중국은 전 세계 석탄의 31.3%(미국 22.3%), 철강 26.9%(미국 11.6%), 원유 8.0%(미국 25.1%)를 혼자서 소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사비 지출 세계 4위, 소비자 구매력에 있어서도 현재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지만 2040년까지는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투자 유치에 있어서도 지난 해에 이미 530억 달러를 넘어서 미국을 앞질렀다. 그 밖에도 전 세계 디지털 카메라의 2분의 1, 모바일폰의 3분의 1, 세탁기의 4분의 1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현재 8,700만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이 숫자는 매달 150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보도를 하면서 ‘슈피겔’의 놀라움은 끝이 없다.

‘슈피겔’은 국제정치 무대에서도 경제력을 바탕으로 서서히 힘자랑을 시작하는 중국의 변화된 면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독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에 대한 야심은 적극 지지하면서도 반대로 일본의 똑같은 야심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상임이사국 자리가 돈으로 사는 자리가 아니라는 논리다. 또한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에 적극 참여(동티모르, 콩고, 아이티), 테러에 대한 전쟁을 명분으로 내세워 티베트와 함께 중국의 오랜 골칫거리인 신장 지역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을 뿌리 뽑기 위한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수단의 다푸르 지역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강경 입장을 거부하고 있는 것 등을 예로 들고 있다. 특히 다푸르 문제에 대한 태도는 중국이 수단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어 수단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슈피겔’이 중국의 대만 문제에 대한 강경책을 언급하면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중국에 대한 경제 분야의 종속 관계 때문에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고 쓴 대목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도대체 지금 유일하게 미국 말고는 중국-대만 문제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든지 명시적으로 중국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있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는 지난 1월 대만 정부가 영구 독립을 위한 국민 투표를 계획하자 ‘중대한 실수이며 책임 없는 시도’라며 대만 정부를 비판하고 중국편을 들어 대만 정부와 외교적 마찰을 빚지 않았던가.

중국은 순조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각종 불안요소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예컨대 △민주화와 인권 문제 △빈부 격차 △환경오염 △에너지 부족 △온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 △소수 민족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극복해야 할 험난한 과제들을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도약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각은 대략 30년 내에 세계 최강대국이 되리라는 데 크게 이의가 없는 듯하다. 유럽 내에서도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중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 국가는 중국을 상대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국의 생산품을 가능한 한 많이 중국에 팔아 실속을 챙기자는 생각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슈피겔’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65%가 중국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 이유로 무엇보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 때문에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독일 정부는 수상인 슈뢰더가 재임 6년여 동안 중국을 모두 5차례나 방문했을 정도로 부지런한 세일즈 외교를 전개하면서 지난 해 대중국 수출액이 182억 유로에 달했다. 유럽국가로서는 수위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것은 독-중 외교 관계가 체결된 1972년에 비하면 무려 70배가 늘어난 수치라는 것이다.

특히 독일이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한 초고속열차가 자국 내에서는 낮은 경제성 및 환경주의자들의 거센 반대로 사장될 처지에 놓였었다. 그러나 중국의 상해 공항~상해 박람회장 구간에 이 열차가 팔리게 된 것을 계기로 중국이 계획하고 있는 베이징~상하이 구간 100억 유로 프로젝트는 이미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지난 8월 이 프로젝트가 예상을 뒤엎고 일본에 돌아간 것으로 전해지자 뒤늦게 상정 가능한 모든 이유들을 추론하며 다소 시무룩한 상태에 빠져 있다.

대중국 수출액 순위로 볼 때 세계 11위, 유럽 내에서는 독일, 영국에 이어 3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프랑스 역시 현재 상황에 만족할 수 없다며 스스로의 약진을 다짐하고 있다. 이달 초 아시아-유럽 정상회담 참석 차 베트남에 들른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는 이어 베이징을 국빈 방문하면서 온갖 중국정부 지지 발언을 쏟아내며 세일즈외교를 펼쳤다. 그는 중국-대만 문제에 있어서 중국 정부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한다며 또다시 중국편을 들었다. 특히 1989년 천안문 사태에 대한 항의 표시로서 유럽 연합이 내건 대중국 무기수출 금지의 해제(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스웨덴, 체코 등 국가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음)를 거듭 촉구하는 외에도, 기술 협력 차원에서 더 많은 중국 학생들을 프랑스에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결과는 40억 유로에 달하는 수출계약의 체결이라는 성과로 돌아왔다. 특히 그중 4분의 1정도는 도산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중공업 회사인 알스톰(Alstom)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이 기업이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일부 언론은 크게 만족하지 않는 눈치이다.

앞에서 언급한 ‘슈피겔’은 기사의 말미에 소위 전문가들의 도움을 빌어 중국의 급성장에 대한 이유들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중국 성장의 첫번째 이유로서 시기심을 들고 있어 이채롭다. 러시아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성공한 사람들을 오히려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하는데 비해, 중국 사람들의 시기심은 반대로 더 성공하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공자의 역할을 들고 있다. 중국에서는 서구 사회의 경우와는 달리 경제적 자유가 곧바로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려는 항의로 이어지지 않고, 대부분의 새로운 중산층이 유일당 체제를 그대로 받아드리도록 하는데 공자의 가르침이 그 밑바탕에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업코리아 / 김성준 객원기자 200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