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티베트 점령 54주년> (上) 갈등의 근원

오는 21일은 중국이 티베트를 무력점령한지 54년이 되는 날이다. `위대한 중화'를 내세우는 후진타오(胡錦濤)체제가 이끄는  신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열요인'으로 대만과 함께 거론되는 티베트는 현지주민의 강력한 항거 속에서도 `중국의 일부'로 유지되고 있다. 중국과 티베트, 갈등의 양측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지리적 위치상 티베트는 13세기 이후 중국의 통치와 영국의 영향을  번갈아가며 받아왔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티베트를 떠났던 중국이 다시 티베트로 고개를  돌린 것은 1949년 국공내전을 거친 `공산중국'이 대륙을 석권하면서부터.

1914년 이른바 맥마흔 라인이 히말라야 산맥 분수령에 설정돼 영국령인 인도와 티베트간의 국경선으로 간주되면서 이 라인 동쪽이 사실상 공백이 됨에 따라 중국이 다시 티베트에 손댈 수 있는 국제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있었다.

중국은 정부 수립 직후이며 한국전쟁 개입시기와 유사한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티베트를 무력 점령했다. 당시 티베트인들은 유엔과 인도, 영국 등에 지지를 호소하며 저항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후 티베트는 1951년 5월 시짱(西藏)자치구로 통합됐고  1954년  중국ㆍ인도간 협정에서 인도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통치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1959년 3월 티베트에서는 중국의 티베트 점령을 반대하는 대규모 저항운동이 발생해 달라이 라마는 자치정부 관리와 추종자 1천명과 함께 인도로 망명해 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이 저항운동 약 4만여명의 티베트인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같은해 티베트 중부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反)중국 활동으로 8만7천여명이 또 숨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진타오가 시짱자치구 당서기로 부임했던 1989년에는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1월 중국정부에 우호적이고 달라이 라마에 이어 서열 2위인 판천 라마가 사망, 중국정부가 통제수단을 잃게됐다.

또 3월에는 1989년 저항운동 30주기를 기리는  대형 소요가 발생했다.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이를 계기로 1990년 4월까지 티베트에는 계엄령이 선포됐다. 그 한가운데에 후진타오 현 국가주석이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

이후 2000년 1월 달라이 라마, 판천 라마에 이어 서열 3위인 카마라 라마가 인도로 월경하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과 인도관계가 외교적으로 고비를 맞던 시절이다. 중국 정부는 이후 티베트와 네팔간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중국에 대한 티베트의 저항운동은 중국내에서 간헐적으로 폭탄테러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저항강도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다만 인도에  위치한 망명정부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노력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동선(動線)은 항상 주목거리가 돼왔다.

중국정부는 미국등 서방국들이 티베트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국내문제에  부당하게 간섭하지 말라'며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中 티베트 점령 54주년> (下) 중국화와 독립 전망

중국과 티베트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만큼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티베트에 대해 철저하게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제도)식 자치'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홍콩이나 마카오와는 다르며,  오히려  대만과 같은 반열에 티베트를 올려놓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천수이볜(陳水扁) 대만총통과 함께 달라이 라마가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이끌고 있는 인도 주재 망명정부는 그동안  독립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략을 바꿔 홍콩처럼 고도의 자치를 요구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을 순방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방의 주요 지도자들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티베트 문제가 현안이 되는 것은 중국이 안고 있는 `중대고민'에 해당된다.

지난 5월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중국내 소수민족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짱(西藏) 민족구역 자치'라는 제목으로 총 1만2천여자의 백서를 발표했다. 이 백서는 독립과 자치요구 주장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임을  확실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백서를 통해 중국은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를  지도자로 하는 정교(政敎) 합일의 봉건적 농노제인 시짱이 티베트 인민들 스스로 수립한 정권으로 대체됐다'고 주장하면서 시짱의 운명과 미래는 달라이 라마가 결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백서는 13세기부터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분이었으며, 1965년 민족구역 자치제도가 실시된 이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제분야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향유하고 있고, 종교의 자유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티베트 정부는 ▲정교일치 시스템은 라마교의 특수성에 비롯된 것이며 ▲민족국가로서 티베트의 존재가 역사적으로 유지돼왔고 ▲2차대전 이후 독립정부를 구성했으나 중국이 무력침공으로 주권을 찬탈했다고 반박했다.

현재 티베트에는 철저한 `중국화'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신의 땅'이라는 뜻의 수도 라싸(拉薩)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가 살던 포탈라궁이 있다. 이 일대는 티베트인들의 성지였으나 지금은 중국상점들이 즐비하다. 심지어 거리이름도  `베이징' 등으로 바뀌어졌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인 거주지역에 중국인들을 대규모로 이주시키고 있다. 이런 조치들은 모두 티베트의 정체성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티베트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이른바 `서남공정(西南工程)'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 역사 왜곡을 위한 `동북공정'과 이름과 목적도 비슷한 이 작업은 덩사오핑(鄧小平)의 지시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티베트는 `자고이래로 중국과 나눠질 수 없다'는 원칙을  학술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인 셈이다. 티베트인들이 7세기초 국가를 형성한 이후 원나라와 청나라 시절을 제외하고 독립국가로 존재해왔다고 주장해온 티베트의 역사를 철저하게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다.

티베트에 대해 독립이나 자치를 허용할 경우 다른 소수민족들이 동요될 것은 뻔한 상황이다. 전략적으로 보더라도 티베트는 인도와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연결되는 요충지다. 또 인근지역인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의 자치구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엄청난 자원이 매장돼있는 타림분지가 있다.

특히 `위대한 중화' 건설에 앞장서고 있는 후진타오가 중국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티베트의 분리독립 운동은 더욱 탄압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후진타오는 기회가 될때마다 "티베트가 독립기도를 포기하고 분리주의 활동을 중지하면 중국정부와 달라이 라마간 접촉 채널을 열려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부 관측통들은 독립보다는 자치권 확대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달라이 라마가 모종의 타협안을 제시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실제로 달라이 라마는 18일 미국 시사주간 타임과의 회견에서 문화와 환경이 보호된다면 티베트가  중국내 자치구로 남은 것이 더 이익일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 뭔가 미래의 변화를 암시하는 대목으로 풀이되고있다. 특히 지난 1993년 달라이 라마와의 직접 접촉을  중단했던 중국정부가 지난 2002년 9월이후 대화를 재개한 상황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티베트 내부의 역학구조가 복잡한데다 중국정부의 대응방향도 미지수여서 향후 극적인 상황변화가 현실화될 지 여부는 여전히 의문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우탁 특파원 2004-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