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인터뷰> 영어로 한국사 쓴 김준길 교수

"영어로 한국사를 쓰는 것은 제가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해왔던 일입니다"

지난해 7월 미국 고교생, 대학생 및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로 한국사 책을 쓰겠다며 브리검 영 대학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갔던 김준길(64) 명지대 객원교수가 돌아왔다.

기자 출신으로 주뉴욕 한국문화원장과 주미 한국대사관 공보공사를 지내기도 한 그는 목표대로 영어판 한국사의 집필을 마치고 지난 6월 말 귀국했다.

그의 원고는 교정작업을 거쳐 내년 1, 2월께 미국 그린우드 출판사에서 '근대국가들의 역사'(The Greenwood Histories of the Modern Nations) 시리즈 한국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200여쪽 분량으로 제작될 그의 책은 8개 장에 달하는 본문 외에도 주요 사건, 인물사전, 용어풀이, 한국관련 연구서적 소개 등 외국인들에게 한국사를 이해시키는 데 필요한 내용을 망라하고 있다.

김 교수는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과 비판을 담은 '서양문화 뒤집어보기'(한국경 제신문사刊)를 낸 바 있고, 해외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데 앞장서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교수를 13일 오후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한국사를 영어로 쓰게 된 계기가 있나.

▲ 88 서울올림픽 준비 당시 해외공보관 문화교류부장이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하는 2만여명의 기자를 위한 간단한 소개책자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정확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초벌원고를 한국어로 작성하고 본격적인 집필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는데 그때 만들었던 책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외에서 외국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영어로 된 한국사 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고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을 영어로 번역한 것은 있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이럴게 아니라 직접 한국사를 영어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인 브리검 영 대학의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한국학과 교수가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서 시작하게 됐다.

--전공이 사회학이라고 알고 있는데.

▲ 내가 한국사 책을 쓰겠다니까 '네가 무슨 역사책을 쓰느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나는 정작 사학을 전공한 사람은 이런 일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학자는 역사의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 전반을 아우르는) 역 사책은 오히려 작가가 써야 한다고 본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근대화를 전공했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번에 쓴 책은 내가 지난 70년대부터 국내외 사학자들의 저서를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꾸준히 수집했던 자료들을 종합한 것이다. 그런 준비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1년만에 영어로 한국사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책에는 어떤 내용들을 담았나.

▲ 고대국가의 형성에서부터 김대중 정권과 남북정상회담 등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큰 흐름을 동아시아 세계질서 속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우리 나라의 문화사, 정치사, 경제사를 아우르면서 의미있는 주요 사건들을 다뤘다. 읽는 재미를 더하려고 '처용가' '가시리'도 번역해 실었고 이방원과 정몽주의 시조도 실었다. 3. 1 운동도 비중있게 다뤘다. 당시 전국적으로 수백만명의 국민이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그동안 우리 역사상 그런 대규모의 저항운동이 없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미독립선언문도 유려한 현대식 영어로 번역해 실었다.

--역사책을 집필하면서 어떤 자료들을 참고로 했나.

▲ 지난 1972년 '신동아'에 천관우 선생이 연재한 '한국사의 조류'를 즐겨 읽곤 했다. 고대사의 개념은 주로 여기에 기초를 두고 썼다. 이외에도 제임스 팔레, 카터 에커트, 마르티나 도이힐러 등의 저서를 정독했다. 뉴욕 한국문화원장 재직 당시에도 영어로 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다. 그때는 서울대 교수 몇 분에게 집필을 의뢰해서 영어로 번역하려고 했었다. 교수들이 분야별로 집필해 나온 책이 '시민을 위한 한국사'라는 책이다. 이번에 한국사를 쓰면서 그 책의 내용도 참고했다.

--집필을 하면서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은.

▲ 미국 교과서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관계에 대해 기술한 부분은 대다수가 그 근원을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 존 페어뱅크(John K. Fairbank)와 에드윈 라이샤워(Ed win O. Reischauer)의 'East Asia'에 두고 있다. 이 책은 식민사관에 기초해 쓰였고 특히 한국사 관련 부분은 더욱 그렇다. 이를 바로잡고 서양인들이 오늘의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하는 내용도 비중있게 다뤘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로 시끄러운데 책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나.

▲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적 이슈인만큼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내 책에서는 고구려를 한, 예, 맥의 왕국으로 다뤘는데 한, 예, 맥은 오늘날 한국의 조상으로 고구려는 당연히 한국사의 일부다. 그것에 대해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책을 한국에서 출간할 생각은 없나.

▲ 솔직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주변에서 한국에서도 책을 내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나중에 봐서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 지난 1년간 한국사 책을 쓰면서 많이 힘들었다. 영어로 한국사 책을 쓰는 것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해왔는데 그 일을 했다. 이젠 책이 나올 때까지 마지막 교정작업을 하면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내년 초 미국에서 책이 출간되면 교민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홍보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200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