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국감인가 외유인가

11일 국회의원 8명이 참석한 주중 한국대사관의 국정감사는 무미건조했다. 의원들이 질의 자료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장영달.신기남.신계륜 의원은 메모지에 적힌 간략한 질문으로 끝냈다. "외교관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데 대사 생각은 어떠냐"(신기남 의원), "중국을 포함해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판단하는데 대사 생각은 어떠냐"(장영달 의원)고 묻는 식이었다. 대사의 생각이 궁금해 베이징(北京)까지 온 것일까.

다른 의원들이 준비해 온 질문도 속 빈 강정 같았다. 중국 내 동포의 한국 입국사증 발급이 어렵다는 현실과 관련해서는 "선양(瀋陽) 총영사관을 방문했는데 비자 브로커들과 영사들의 비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였다"(정문헌 한나라당 의원)는 것에만 관심을 보였다.

비자 발급이 까다로운 게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이 사안이 중국 내 동포에 대한 출입국 제한을 풀어야 하느냐 마느냐의 정책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가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보충 질의도 다르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은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중국이 먼저 하면 안 된다. 북한의 고구려 유적이 이에 앞서 등재될 수 있도록 남북 간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사장의 많은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 중국 내 고구려 유적은 이미 같은 기간에 등재하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탈북자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 등 현안이 많은 대사관에 대한 국정감사치고는 너무 태평했다. "서로 잘해 봅시다"로 끝난 인사말. 정중하고 우호적이지만 전혀 감사다운 감사가 펼쳐지지 않은 3시간 남짓이었다. 외유(外遊)성 국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중앙일보 / 유광종 특파원 200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