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연 국제학술회의 고구려사-민족주의 논쟁

“고구려사는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닌 고구려사일 뿐입니다. 한국과 중국 모두 민족주의사관과 정치적인 접근을 벗어나야 합니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

“강자(중국)가 약자(한국)를 때렸는데 피해자가 먼저 국사를 해체할 수 있나요. 역사왜곡 사실을 밝히기도 전에 포기하자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꼴입니다. ” (최광식 고려대 교수)

8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 대강당에서 ‘동ㆍ서양 식민지 역사 서술과 민족주의’를 주제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서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와 민족주의 역사관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정문연 국제한국문화홍보센터가 독일 게오르그 에케르트 국제교과서연구소(소장 볼프강 회프켄)와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학술대회에는 중국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의 리궈치앙(李國强) 교수를 비롯, 국내외 학자 2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중국 고구려사 왜곡의 정점인 동북공정과 이를 바라보는 민족주의적 관점 등의 문제점에 대해 학자들이 직격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동북공정 주도자로는 처음 방한해 관심을 모았던 리 교수는 자신이 고구려사 전문연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원론적인 입장만 밝혀 다소 맥이 빠졌다.

리 교수가 발표한 ‘동북공정과 중국 동북사에 관한 연구’는 동북공정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한 수준이었다.

“동북공정은 그 동안 분산돼 있는 동북변강역사를 총체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순수한 학술목적의 목적”이라고 전제한 그는 “고구려가 중국 변강민족정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주류의 관점이긴 하지만 독립국가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소개한 후 “학술문제인 만큼 한중 양국이 솔직한 토론을 거쳐 해결해나가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머지 참석자들은 “국수주의적 사관” “서구중심적인 몰역사적인 관점” 등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해가며 치고 받았다.

첫 포문은 최광식 고려대 교수(고구려연구재단 이사)가 열었다.

고구려 연구재단을 대표해 나온 최 교수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한국의 대응’이라는 글을 통해 고구려의 조공사실, 역사계승 문제 등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반박했다.

특히 고구려의 고씨와 고려의 왕씨가 혈연적으로 다르고 시기적으로 250년 이상 차이가 나므로 계승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최 교수는 “그렇게 본다면 중국 왕조는 한족과 북방민족이 번갈아 가며 중원을 차지했으므로 계승성이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고대국가에서 삼국간 적대관계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한국사라는 하나의 역사로 묶일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자 “혈연적 동질성과 언어 등을 고려하지 않은 몰역사적인 관점”이라고 몰아 부쳤다.

서울대에서 한국고대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파카이 모한 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조선족 중심의 민족주의 위협을 제거하거나 대체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어떻게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중국은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고, 우리는 고구려가 독자 왕조국가라는 서로 민족주의 사관을 고수하는 한 고구려사 문제는 정치적인 방식으로 풀 수 밖에 없다”면서 “미래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사관을 갖자”고 제안했다.

(한국일보 / 최진환 기자 2004-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