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언제까지 한글을 이렇게 홀대할건가

한글의 우수성은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전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만큼 과학적이고 편리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한류' 열풍과 함께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몽골에서는 한글 큰 잔치가 열렸고, 일본과 베트남에서는 한국어 능력시험 응시자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로 한글유학을 오는 외국인도 부쩍 늘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전국 각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1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제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인력 양성에도 신경을 써야 할 정도다.

그러나 이런 한글이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홀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정부를 포함해 많은 공공기관들이 한글을 배척하는 인상이 들 정도다. 법정 공휴일이었던 한글날을 일반 기념일로 격하시킨 것도 그렇거니와 이제는 아예 `Hi Seoul...' 처럼 기관의 행사 이름을 외국어로 표기하는 일도 서슴없이 하고 있고, 이를 받아들 이는 사람들도 별로 저항이 없어보인다. 대기업들이 대외 경쟁력 강화 차원이라며 LG, SK, CJ 등 회사와 브랜드 이름을 영문 이니셜로 표기하는 `유행'에 편승해서 아파트 건설을 주사업으로 하는 서울시의 도시개발공사까지 금년 봄 SH공사라고 이름을 바꿨다. 도대체 누구를 배려한 명칭 변경인지 이해가 안가는 행태다. 하긴 한 부동산 포털사이트가 2000년 이후 입주한 아파트의 이름을 조사해본 결과를 보면 353개 아파트단지 가운데 우리말 이름을 쓰는 곳은 3.7%인 13개에 불과했고, 영어.프랑스어 등 외국어 이름이 217개(61.4%), 건설사 명칭을 차용한 이름이 95개(43.7%)로 나타났다고 하니 시비를 걸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20여년전 한때 아이들의 이름을 비롯해 음식점의 상호같은 것을 순 우리말로 짓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거리의 간판은 완전히 외래어 일색이고 잡지나 방송 프로그램 이름도 외국어가 아니면 대접받기 힘든 세상이 됐다. 심 지어 TV에서 기상예보를 하기에 앞서 나오는 화면의 자막이 `Weather Center'라는 영어표기로 바뀐 상태다. `날씨'나 `기상안내'라는 글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정말 의문이다. 컴퓨터 통신언어의 한글파괴 문제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단순히 맞춤법 표기상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웃기다'같은 어법상 잘못된 표현이 왜 문제인지 모르는 수준까지 갔다.

그러나 학자와 학생을 비롯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글을 지키고 바로잡기 위해 티내지 않고 애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라져가는 우리말들을 찾아내는데 열정을 쏟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민간부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먼저 정부가 정신을 차려야 할 일이다. 세계화시대일수록 우리는 한글을 잘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연합뉴스 2004-10-8)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 왜 버려두는가?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장승욱 지음/하늘 연못)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박남일 지음/서해문집)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조항범 지음/예담)
안 써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남영신 지음/리수)

말에도 신분이 있다. 어디 그 뿐일까. 권력과 계급, 정치와 경제에도 있다. 박남일이 책의 서문에서 얘기하듯, 조선시대는 지배층의 어려운 한자말이 득세했고, 일제침략기에는 친일 앞잡이들이 앞장서서 일본말을 퍼뜨렸으며, 해방 이후에는 영어구사 능력이 신분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이제 세계화와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우리말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프랑스가 국어보호법을 통해 자국어를 강력하게 지켜나가는 것도 국가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네틀과 수잔 로메인이 지은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이제이북스)에선 21세기에 최소한 세계 언어의 90% 정도가 사멸해 버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힘없는 종족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과 그 바탕인 ‘모국어’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졸라 방가’ ‘추카추카’등 인터넷 통신 언어의 우리말 해체는 어떤가. 어른들의 말글이 엉망이면서 아이들이 올바른 우리 말을 쓰기를 기대할 순 없다.

우리말 살리기는 곧 우리 문화와 정서를 지켜간다는 의미다. 뻔한 결론이긴하지만, 문자 매체나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주 우리말을 찾아쓰고 교육과정에서 우리말을 가르치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든다. 마침 한글날에 맞춰 우리 말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연구해온 사람들이 책을 내거나 재출간했다.

책들을 보면, 새삼 우리 말의 다양한 표현 방식과 소박한 아름다움에 놀라게 된다.

기자 출신이면서 시인인 장승욱씨는 지난해 한글문화연대가 선정하는 제1회 우리말글작가상을 받았던 작가다. 책 제목 중 ‘도사리’란 익는 도중 바람이나 병 때문에 떨어진 열매를 가리킨다.

저자는 지난 5년간 ‘이른 새벽 과수원에 나가 도사리들을 줍는 심정’으로 4793개의 우리말을 모아 본뜻과 속뜻, 올바른 쓰임을 전해주고 있다. 생활, 세상, 자연, 사람, 언어 등 다섯 분야로 분류해 우리말들을 모아 놓았는데 참 대단한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재미있다.

예컨대 날씨만 봐도 아주 맑은 날씨는 ‘드맑다’ ‘새맑다’ ‘샛맑다’, 조금 맑은 듯한 상태는 ‘맑스그레하다’ ‘말그스름하다’ ‘말그스레하다’, 반대로 흐린 날씨는 ‘검기울다’ ‘그무러지다’ ‘째푸리다’ ‘아등그러지다’ 등의 표현이 있다. 겉보기는 괜찮은데 아무 소용없는 물건은 ‘나무거울’,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보잘 것 없는 물건은 ‘굴퉁이’(씨가 여물지 않은 늙은 호박)라고 한다…등등.

작가이자 우리말 연구자인 박남일씨의 책도 우주와 자연, 일상생활과 문화 등 5분야로 나누어 우리말을 모아 놓았다. 비(雨)만해도, 초가을에 쏟아져내리다가 개기를 반복하는 것을 ‘건들장마', 땅바닥을 두들기듯 오는 것은 ‘날비’,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 조금 가는 비를 ‘는개’, 빗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를 ‘발비’라고 하고, 비를 잠시 피해 그치기를 기다리는 일을 ‘비그이’, 우산은 ‘비받이’다.

먼산에 구름같이 끼는 보얀 기운은 ‘바람꽃’, 높은 고원에서 갑자기 산 밑으로 불어내리는 차갑고 센 바람은 ‘보라바람’, 봄철에 부는 찬바람이나 좁은 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은 ‘살바람’, 이른 봄에 살속으로 기어드는 맵고 찬 바람은 ‘소소리바람’, 모낼 무렵 오랫동안 부는 아침 동풍과 저녁 북서풍은 ‘피죽바람’이다. 요즘은 간혹 쓰이지만 부부를 낮추어 ‘가시버시’라 하고, 먼 친척은 ‘결찌’,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우연히 만나 사는 남녀는 ‘뜨게부부’, 서로 겨우 낯을 아는 정도의 사이는 ‘풋낯’이라고 했다.

국문학자인 조항범(충북대 국문과) 교수의 책은 좀더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저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1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1만3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어원이 불분명한 단어나 관용표현을 100개 선정했다. 이를 일상어와 비속어의 범주로 나눠 참신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거덜났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거덜은 조선시대 관아에서 가마나 말을 돌보는 종을 가리켰다. 말똥 따위를 치우는 낮은 신분이지만 윗 사람이 행차할 때 ‘물럿거라’하고 소리치며 행렬 앞에서 우쭐거렸는데, 여기서 ‘거들거들’ ‘거드름’이라는 말도 나왔고, 이것이 몹시 흔들거린다는 의미로 바뀌면서 재산이나 살림이 허물어진 것을 지칭하게 됐다.

빈대떡은 17세기 문헌에 보이는 ‘빙져’에서 처음 나오는데 이는 중국어에서 온 것이다. 곧, ‘빙져’는 ‘빙자’를 거쳐 ‘빈 쟈듳ㄱ’으로 변했다가 빈대떡으로 자리잡는다. 이밖에도 갈매기살, 마누라, 라면, 멍텅구리, 얼레리꼴레리, 거시기, 꼴통 등 정말 어원이 궁금한 우리말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평생을 국어운동에 바친 남영신(국어문화 운동본부 회장)씨의 책은 한자와 영어 등 외래어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리말에 대해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참꽃, 개꽃 , 버들개지, 노굿, 다지, 꽃등 등 이제는 생소하게 돼버린 우리 말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눈알보다 안구, 입안보다 구강을 선호하면서 괴좇(구기자)과 오얏(자두) 같은 예쁜 말들이 한자어로 대체됐다.

(문화일보 / 엄주엽 기자 2004-10-8)

"우리 글 간판이 장사 잘 된다."

우리나라의 공용어 변천사

오는 9일은 한글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용어는 [우리말. 한자. 영어. 일본말 ] 등 네 가지이지만, 20세기만 해도 네 번이나 바뀌었다. 그 공용어 중에서 삼국 시대부터 써 온 한자의 역사가 제일 길다. 15세기에 와서야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들며 국어가 처음 나타나고, 19세기말에 ‘국어부흥 운동’이 일어난다.

이어서 영어와 함께 일본어가 본격적으로 들어온다. 이 시기 공용 문자는 한자를 포함한 일본글이었지만, 또한 국한문 혼용으로도 썼다. 현재는 영어는 초, 중, 등, 대학을 지나 각종 기업체 입사에 필수적인 학문으로 자리잡았다. 즉, 영어는 돈과 출세, 권력, 명예로 이어지는 조직적 연장이자 관문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조기영어교육은 물론이고, 영어 능력 시험이 의무 시험이 되고, 거기에 대학 재학 중엔 어학 연수를 가는 것이 바람을 넘어 관례로 굳어진 듯 하다.

한글 간판의 조사내용

이렇게 우리나라의 공용어가 바뀌고 있는 가운데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결과 간판을 우리말로 바꾼 경우 영업에 도움이 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 매출 부진으로 고민하는 영업주들은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볼 만한 조사 결과다.

물론 업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간판을 우리말로 바꿔 달았을 경우 영업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결과 56%가 간판을 우리말로 교체해서 매출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반면 외래어로 바꾼 후 성공한 매출 성장을 보였다는 의견도 40% 정도로 나타났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로 나타났다.

사업주들이 외래어 상호를 선호하는 것은 이런 상호가 영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라는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외국어의 간판 수치는 근래 들어 급격히 늘어난 국적불명의 합성어의 증가에서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면[헤어 환타지] [만화cafe] [북 토피아] 등으로 인터넷 사이트들의 영향도 큰 것으로 분석됐다.

한글 간판의 종류

잘 지은 우리말 간판도 늘고 있는 실정이며, 어쩐지 정감이 가며, 담백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소비자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몸에존집 (기능성 식품점)] [웃음꼬치 구이점(꼬치 구이점)] [가위소리(미장원)] [코스닭(통닭집)] [반지랑 핀이랑(장신구)] [먹을래 사갈래(식당)] [주주총회(술집)] 등이 대표적이며 [철면피(철판구이)] [지지고 볶고(미용실)] [버르장 머리(이발소)] [커피 위에 뿌려진 노란 햇살(음료)] [나비야 청산가자] [달아 달아 밝은 달아(주점)] 등 문장이나 구, 절 형태의 간판이 많아졌다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다.

소비자들이 간판의 글(文字)에 대한 취향이 바뀌면서 간판=매출이라는 개념이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어 우리 글이 더욱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간판은 우리 글로 된 간판을 거꾸로 매달아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우도 눈에 띄어 간판에 대한 문자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브레이크뉴스 / 최재승 기자 2004-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