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은 끝났는가?

이른바 ‘동북공정’이라는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규탄하는 분노의 목소리로 뜨거웠던 여름이 지났다. 8월 하순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한-중 양국 간의 ‘구두 양해’가 있었으며, 이어 자칭린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구두 메시지’를 가지고 방한하였다. 이날 면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자칭린 주석은 ‘유념’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일련의 외교적 행위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고구려사를 둘러싼 갈등은 일단 봉합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중국 쪽이 교과서나 정부 출판물에 의한 고구려사 왜곡은 더 없을 것임을 분명히한 것”이라는 정부의 희망 섞인 해석과는 달리, 채 한 달도 못 되어 중국의 약속은 허구임이 드러났다. 중국 문화부가 주관해서 발행하는 〈중외문화 교류〉 9월호에서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생활했던 고대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지금까지의 주장을 되풀이했으며, 중국 인민교육출판사 홈페이지의 ‘역사지식’이라는 코너에서도 고구려를 중국사로 서술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항의에 중국은 ‘5개항’의 합의를 준수하겠다는 답변을 해 왔다고 하지만 그 말을 또 믿으라는 것인가? 이제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중국의 행보를 예상하고 단계별, 분야별 대응책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학술적’ 연구를 통한 왜곡논리의 정교화와 함께 교과서 및 각종 홍보물, 세계 각국에 구축된 중국학 네트워크를 통한 왜곡 내용의 국내외 전파 등이 우선 예상되는 중국의 행보다.

고구려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부터가 문제의 시작이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사실 그동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논리는 매우 허술했으며, 그 자체를 학술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 중앙의 주류 학자들과 세계 각국에 구축된 거대한 중국학 네트워크가 움직인다면 십여 명에 불과한 우리의 고구려 연구 인력으로 어찌 대응할 것인가? 이 문제는 학자들만의 몫은 아니며,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학계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 등 각 분야에 걸친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논의를 통해 고구려사 연구의 지원, 한국사 교육의 강화, 국내외 한국학 연구체제 정비 및 지원, 남북한 고구려 역사 및 문화재 분야 교류·협력을 통한 공동 대응, 외교·통일·교육·문화 부문을 아우르는 정부 내 상설기구 설치 등 다각적인 대응책이 제시되었으며, 자세히 논하는 것도 새삼스럽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지난 3월 ‘고구려연구재단’을 설립한 것이 고작이다. 재단의 설립으로 고구려사 문제를 학자들에게 모두 떠넘기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은 지나친 자격지심탓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기능과 목적 등에 대해 충분한 합의가 없이 급조된 재단의 현재 모습은 몹시 불안하다. 법적 근거도 없는 민간재단에 약간의 예산을 지원하는 현재의 재단 운영체계로는 학계의 역량을 온전히 결집시키기도 어렵다. 지금이라도 재단의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하고, 운영체계를 정비해야만 한다.

‘동북공정’ 문제로 시끄럽던 때 아차산에서는 고구려유적이 발굴되었다. 천오백년 전의 성벽과 건물지 등의 시설물과 함께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고구려 연화문 수막새가 출토되어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관련 전문가들의 회의를 통해 추가 발굴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으나 예산상의 이유로 발굴된 유적을 다시 흙으로 덮을 뻔했으며, 아직도 발굴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1997년부터 아차산의 고구려 유적을 발굴하고 보존과 활용대책을 제시하였으나 어느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경험을 새삼스레 들추어낼 필요는 없다손 치더라도 ‘동북공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종택 고려대 교수·고구려고고학>

(한겨레신문 2004-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