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우리魂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 <24·끝>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귀속하려는 중국,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일본 등 양국의 패권주의적인 움직임이 노골화되면서 우리에게도 영토분쟁은 역사나 문헌상의 문제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 재인식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창간특집 ‘우리 땅 우리 혼,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4월2일부터 6개월간 주1회 연재해왔다. 그리고 시리즈를 마치면서 한국을 둘러싼 영토분쟁의 본질은 무엇이고, 정부와 민간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돌아보는 전문가 좌담을 마련했다. 지리학자 서울대 이기석(李琦錫)교수, 역사학자 포항공대 박선영(朴宣怜)교수, 국제정치학자 경희대 정진영(鄭璡永)교수가 참석했다.》

● “동아시아의 미래는 유럽의 과거다”

▽ 정진영 교수=1990년대 초반 국제정치학자들은 “동아시아의 미래가 유럽의 과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근대의 유럽처럼 21세기 동아시아에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당시 한국학자 등은 경제분야에서 동아시아 각국 간 협력 필요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경쟁이 야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영토분쟁도 그러한 경쟁의 한 측면이다.

▽ 이기석 교수=한중일 3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경쟁체제가 자리 잡은 것이 영토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남북한 화해 분위기도 영토분쟁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중·일 양국은 남북한이 통일되기 전에 한반도와 관련한 영토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 박선영 교수=세계화도 영토분쟁의 한 원인이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각 나라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다보니 오히려 각국이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자국의 정체성을 더 확고히 하려는 것 같다.

▽ 정 교수=서유럽에 비해 한중일 3국이 다소 비정상적으로 근대국가를 형성한 점이 동북아 영토분쟁의 근원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유럽은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영토분쟁이 거의 마무리됐다. 그러나 한중일 3국이 근대국가로 진입하는 모습은 유럽과 달랐다. 즉, 세 나라가 서로의 영토를 인정하면서 근대국가를 세울 수가 없었다. 동북아 영토분쟁은 탈(脫)근대의 시기에 근대의 과제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중국·일본은 공세적, 한국은 수세적

▽ 박 교수=중국은 세계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국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영토분쟁에 대비해 왔다. 동북공정(東北工程)도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지구촌의 중심이 서구에서 동북아로 옮겨오는 것을 간파하고 본격적으로 주도권 잡기에 나선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간도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과의 분쟁을 차단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정 교수=중국과 일본이 영토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은 수세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중일 양국은 적극적으로 “저 곳은 우리 땅이다”라고 주장하는데, 한국은 “왜 넘보느냐”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 박 교수=동북아의 평화유지를 위해서라도 영토문제를 명확히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되 우리의 기본원칙은 팽창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분쟁이 아니라 평화공존을 위한 문제제기라는 점을 중일 양국에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총괄부서도 없고 전략도 없는 한국

▽ 이 교수=영토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영토갈등이 빚어지는 곳에 대한 기초조사부터 충실히 해야 한다. 이번 동아일보 시리즈의 가장 큰 의의도 영토분쟁 현장을 직접 찾아가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조사했다는 점이다. 시리즈 내용은 영토문제에 관한 교육과정에도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정부 차원의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독도에 대한 조사가 전부다. 백두산 간도 녹둔도 등 영토분쟁 소지가 있는 지역에 대한 철저한 실사가 필요한데, 이런 작업을 추진할만한 정부 부처가 일원화 되어 있지 않다. 동해 표기 문제만 해도 관련업무가 외교통상부와 건설교통부 등에 흩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 내에 영토문제를 총괄해서 다룰 수 있는 부서가 있어야 야 한다. 외교문제 때문에 정부가 나서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동북공정에 대처하기 위한 고구려연구재단처럼 민간에 전문기관을 둘 수도 있다.

▽ 박 교수=전문연구팀을 두고 전략적으로 연구하는 게 꼭 필요하다. 개별학자들이 산발적으로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유기적인 전략을 세울 수 없다. 역사 지리 정치 국제법 등 관련분야를 망라한 연구팀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중일 3국에 러시아까지 포함해 동북아 지역 영토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영토문제는 단순히 두 나라의 문제만이 아닌 경우가 많다. 간도문제만 해도 한국 북한 중국 외에 이곳을 침략해 자기 땅으로 삼았던 일본까지 관련이 있다.

▽ 이 교수=동해표기 문제를 갖고 유엔에 10년 넘게 출입하다 보니 단순한 문헌연구를 넘어 분쟁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실제조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류 몇 장 제출하는 것만으로 국제사회에서 분쟁지역의 영유권을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쟁지역의 역사적인 배경은 물론 현재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대한 실사자료를 축적해 두어야 한다.

▽ 박 교수=그런 실사를 위해서라도 전문연구팀을 만들어야 한다. 당장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간도인지에 대해서도 연구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 경제권과 문화권 확대도 ‘영토확장’

▽ 이 교수=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분쟁지역에 대한 우리의 주장과 그 정당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 학자들도 국제학회에서 자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 입장에 맞게 국제분쟁(International dispute)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간도나 녹둔도 같은 곳이 어느 일국의 땅이 아니라 분쟁지역이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아야 한다. 아울러 영토분쟁은 긴 시간을 요하는 문제라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정부가 가장 성공적으로 국제여론화하고 있는 동해표기 문제만 해도 유엔에 제기해 국제분쟁화하는데 6년이 걸렸다.

▽ 박 교수=서구 학자들은 간도가 한중간 분쟁지역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개별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정부의 체계적인 노력이 시급하다.

▽ 정 교수=국민의 인식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경우 과거엔 자국영토였으나 현재는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을 ‘빼앗긴 영토’라고 표시한 지도를 쓰고 있다. 국적기인 핀에어(FinAir)조차 그 지도를 기내에 배치해 놓고 세계 각국을 비행한다. 우리도 이런 지도를 만들어 국민 누구나 우리 영토에 대한 역사지리적 이해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 이 교수=그런 점에서 이번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현장탐사와 자료고증을 통해 지금껏 누구도 그리지 않았던 새로운 지도를 여러 장 그려냈다는 점을 짚어두고 싶다. 그것들을 보완하고 종합해 보급할 필요가 있다.

▽ 정 교수=단순히 지리적인 영토확장을 넘어 한민족의 경제권 문화권 생활권을 확대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경제권과 문화권의 확대는 또 다른 방식의 영토확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 상품과 문화의 소비지로서 개발의 여지가 충분하다. 경제성이나 투자가치가 있느냐만 따져서 접근하지 말고, 정부와 기업들이 거시적인 안목으로 이 지역에 한국의 경제와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동아일보 / 특별취재팀 2004-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