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새 역사교육체계 수립 시급하다

한·중·일 3국 사이에 동아시아 역사분쟁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하려 해 지난 1년여 동안 우리의 혈압을 오르게 했지만 시원스레 해결되지 못하고 잠복했다. 중국 외교당국이 내년도 검정예정인 역사교과서에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외교적 언사가 구두로 나왔을 뿐 확실한 보장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역사교과서에 수록되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작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이라고 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을 감행하고, 중국 외교당국이 지방 민간학자들의 활동임을 내세워 방어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북한 핵문제, 날로 높아가는 중국과의 무역 비중, 패권주의적 중국의 대외정책 등에 떼밀려 엎질러진 물이니 어쩌겠느냐, 수년 뒤의 개정을 위해 노력하자는 식으로 얼버무려 버리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내년 봄에는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일본의 우익 역사교과서 재검정이 있고, 현장에서 그 교과서를 채택하는 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있고, 일본 총리를 비롯한 각료,국회의원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우리의 항의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 중국과의 역사분쟁에 한국이 대응하는 방식을 보았으니 일본도 이참에 좀더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중·일 3국간의 역사분쟁 실상을 너무 어둡게 그렸는지 모르겠으나 강대국 사이에 끼인 우리의 처지는 이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떠한가. 어떤 학자는 고구려의 역사는 고구려의 주민에게 돌려주자고 주장하는데, 고구려의 주민은 찾을 길이 없다. 우리가 고구려의 땅을 전부 우리 땅이라고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 역사계승관계를 살펴 우리의 정체성을 탐구하자는 것인데, 그것조차 부정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니니 해방시키라고 한다. 오히려 해방시켜야 할 대상은 중국 주변의 수많은 소수민족과 그들의 국가 및 역사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의 변화가 미·중 관계와 남북통일에 미칠 영향이다. 북한의 변화방향에 따라서는 이제까지 겪어온 세월 이상으로 분단상황이 지속되지 말란 법이 없다. 중국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역사문제를 중심으로 포석하는 것이라면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

경제적 지표에만 의존해 식민지시대에 성공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왜 500여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가 되어 세계를 떠돌았는가. 경제적 지표 못지않게 역사의 전체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조선총독부, 또는 일본정부가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자료가 없다고 하여 그 사실이 없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일본이 식민지시대의 정책문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추궁해야 한다.

지난달 11일 남북 역사학자교류협의회에서 남북 공동으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자는 결의를 하고 실천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것은, 중·일의 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이 연대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할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 역사교육의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일이다.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한편, 우리의 극단적 국수주의도 극복할 수 있는 균형잡힌 역사의식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중·고교 교육과정에서처럼 역사과목이 사회과목의 품안에 파묻혀 있어서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역사과목을 사회과목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역사교육을 소홀히 하고서는 민족과 국가, 역사와 문화 그 어느 것도 지킬 수 없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서울신문 2004-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