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희망이다](3) 단군신화 속의 숲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면서부터 숲은 살아가는 필수공간이었다. 동시에 정복의 대상이기도 했다. 둥지를 틀 재료를 얻고 사냥터로는 숲과의 공존이 필요했으며, 곡식을 심고 가꿀 땅을 만들기 위하여는 파괴로 이어졌다.

숲의 주체는 바로 나무, 어느 민족이든 나라를 세운 신화에는 나무가 등장한다. 북유럽은 이그드라실(Yggdrasil)이라는 거대한 물푸레나무가 하늘과 땅위와 땅속을 이어주는 통로로서 세상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북아시아는 전나무, 시베리아 사람들에게는 자작나무가 그들의 민족을 대표하는 나무였다.

우리 선조들도 숲과 함께 이땅에 정착했음에 틀림이 없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내용대로 민족의 시작은 환웅이 하늘나라에서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에 내려오면서부터다. 신단수의 신단은 하늘에다 우러러 비는 제사터다.

‘수’는 신단이 쌓아지면서 자연스레 주위에 자라기 시작한 나무들이다. 그러나 신단이 위치한 큰 산 꼭대기는 바람이 쌩쌩 불고 겨울이면 모두가 얼어터지는 곳이다. 꽈배기처럼 비틀어진 작은 나무가 볼품없이 자랄 따름, 신이 깃들어 있다고 우러러볼 만한 큰 나무는 어림없다.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대도 태백산 꼭대기에 자랄 수 있는 실제나무는 아예 드러누워 버린 누운주목이나 누운잣나무일 터이다. 아니면 겨우 생명을 부지하는 난쟁이 사스레나무가 고작일 것이다. 이런 곳에는 무리 3,000은 고사하고 혼자도 버티기 어렵다. 환웅이 하늘에서 곧장 내려오셨든, 아니면 큰 산을 넘어온 이주민의 수령이었든 간에 도착하자마자 옮겨갈 장소를 찾아야 했다.

신단을 쌓아 제사의식을 치르고 곧바로 하산하셨을 것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임시정거장으로 썼을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나무숲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평지로 내려오신 환웅과 그의 일행은 우선 숲을 없애는 일부터 시작하셨을 것이다. 무리를 먹여 살리는 일이 간단치 않으니 농사지을 땅 확보가 급선무다. 토템사상으로 무장된 옛 사람들에게 큰 나무는 숭배와 두려움의 대상이다. 큰 나무는 개간의 도끼자국은 피해갈 수 있었다. 남겨진 곳이 바로 ‘단나무(壇樹)’와 그 일대일 것이다. 단나무란 제단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란 뜻이다. 그래서 환웅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 신단수와 평지로 이동하신 다음의 단나무는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결국 단군할아버지가 나라를 열어 통치이념을 전파한 곳이 높은 산꼭대기 신단수 아래라고 보기는 어렵다. 넓은 들판이 가까이 있는 구릉지나 평지의 단나무가 있는 곳을 근거지로 했을 것이다. 또 호랑이와 곰에게 인내심 테스트를 시킨 마늘과 쑥도 산꼭대기 신단수가 아니라 평지의 단나무와 관련이 있다. 두 식물은 높은 산을 자람 터로 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곳 가까이 심거나 자연적으로 자란다. 사실 마늘은 기원전 200년 경에 중국에 처음 들어왔으니 환웅이 주신 마늘은 비슷한 기능을 갖는 산마늘이나 달래일 가능성이 더 크다. 곰 여인 웅녀는 바로 이 단나무에 빌어 환웅과 혼인하고 단군을 낳는다. 제왕운기의 이야기는 약간 달라 환웅의 손녀가 단나무 신에게 시집가서 단군이 태어났다고 한다.

단나무와 단군할아버지를 나타낸 ‘단’에는 당시의 숲을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가 들어 있다. 글자를 보면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박달나무 ‘단(檀)’을 쓰고, 삼국유사에서는 제단을 의미하는 ‘단(壇)’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단군의 태교 장소가 된 단나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숲의 실체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제왕운기에 기록된 한자뜻 그대로 박달나무 아래서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달나무는 우리나라의 어디에나 자라며 단단하기가 나무 중 제일이고 방망이, 홍두깨, 다듬잇방망이로부터 상상의 도깨비방망이까지 만들어냈다. 조상들과는 이렇게 친근한 나무지만 자람 특징으로 보아서는 단을 둘러싼 숲의 대표나무가 되기에 부족함이 많다. 우선 박달나무는 몇백년에서 천년을 넘길 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 자라는 모양도 곧바르게 하늘로 솟은 키다리 꼴이다.

가지를 넓게 펴서 주위를 넉넉하게 감싸주고 악귀를 쫓아내는 위엄을 갖추어야 하는 제단의 나무로서는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단나무가 단군왕검이 나라를 열던 시절의 박달나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무의 이런저런 특징이 신단을 이루는 나무로서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단을 이루는 나무의 주체는 무엇이었는지 다른 방법으로 찾아 들어가보자.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단수, 즉 단나무는 당나무(당산나무)와 맥이 통한다. 오래된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서 볼 수 있는 서낭당의 원형이 단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전형적인 서낭당은 돌로 쌓아 올린 단(壇)과 큰 나무가 있게 마련이다. 아울러서 때로는 당집이 있는 작은 신의 공간이기도 하다. 당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따라서 오늘날 드물게 남아 있는 서낭당의 나무를 보면, 비슷한 성격의 당나무가 바로 단군할아버지께서 나라를 열던 당시의 나무를 짐작해볼 수 있는 지표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당산나무의 3분의 2 이상이 느티나무이며 참나무, 서어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과 어우러져 작은 숲을 이룬다. 한마디로 예부터 서낭당을 이루는 당나무는 느티나무에서 느티나무로 계속 이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느티나무라면 세월을 압도하는 긴긴 삶과 우람한 덩치로 하늘과 땅을 잇는 민족의 나무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느티나무와 함께하는 숲을 배경으로 5,000년 우리의 역사는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박상진 / 경북대 임산공학과 교수>

(경향신문 2004-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