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의 비밀과 사라진 역사서

있지도 않은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는 창조하는 것” 또는 “역사는 힘 있는 자의 것”이라는 ‘그릇된 신념’에 차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고구려가 한민족 자체임을 애써 무시하고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들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한민족을 자기네 민족이라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짓이 한심스럽다지만 돌아보면 우리의 역사관 또한 한숨을 자아낸다.

일제 식민사관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암흑으로 빠뜨린 뒤 그속에서 우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의 견해가 다르다보니 실체에 접근하기는커녕 역사를 말할 때 혼돈스럽기 그지없는 형편이다.

“강단사학의 뿌리는 식민사관에 있고, 재야사학만이 한민족 정통성을 잇는 올바른 역사다”라는 주장이 강한 반면, “역사란 의지만을 가지고 조명할 수 없는 것이다. 고고학적 발굴이나 사료를 통해 실체에 접근해야지 역사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갖고 역사를 맞추어 나갈 순 없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이 세계를 뒤흔든 초강국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해 우린 어떤 입장을 지녀야 할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에 대해선 위서(僞書)논란이 여전할 뿐이다.

하물며 ‘있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실체가 없는 역사서’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중국이 없는 역사로 만들어내는 판에 ‘있는 역사’마저 소극적으로 해석해서야 우리 민족의 실체를 가릴 수 없겠다.

고구려의 뿌리를 담았다는 ‘유기(留記)’가 좋은 사례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는 초기에 ‘유기’라는 100권으로 된 역사서를 편찬한 바 있는데, 영양왕 11년(서기 600년)에 태학박사 이문진은 이것을 ‘신집(新集)’이라는 5권의 책으로 개수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조선이 붕괴된 다음 B.C 37년에 고구려가 건국됐다.

유기에는 씨족 시기부터 독립국을 세우기까지 고구려족의 역사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조선의 역사도 포함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단국대 윤내현 교수(사학과)는 “유기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알고자 하는 사람들, 겨레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가슴 아픈 일”이라며 “이 유기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 민족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다”고 말했다.

신화라는 이름으로 침묵을 강요당하던 우리의 고대사가 뒤늦게나마 역사의 전면으로 나서고 있다.

고구려 유기 1,2권(하용준 지음, 더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펴냄)은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지의 문헌 ‘유기’를 추적하는 역사추리소설이지만 고구려의 실체를 밝히는 열쇠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파리의 연인’ 제작사가 ‘고구려 유기’를 드라마화하고, 장선우 감독 또한 이를 영화화하는 등 젊은 세대에 고구려의 잠재력을 대중적으로 알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중국의 억지 속에서 말이다.

(포커스 2004-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