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史 왜곡 누가 주도하나…‘핵심 3인방’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고구려연구재단의 제1회 고구려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쑨진지(孫進己·73) 중국 선양(瀋陽) 동아연구중심 주임은 그동안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왜곡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 그런 그가 “내 학설은 마다정(馬大正·56) 등이 주도하는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의 동북공정 논지와 다르다”고 말했다. 같은 중국학자들간에도 미묘한 의견차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고구려 역사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 학자는 누구이고, 그 차이는 무엇일까.》

○ 1981년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등장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기폭제가 된 것은 1981년 ‘중국 민족관련사 학술좌담회’로 꼽힌다. 고 탄지샹(潭其양)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 교수는 이 좌담회에서 “역사적으로 중국의 판도 안에 있던 모든 국가나 민족은 중국에 귀속된다”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들고 나왔다. 이후 이 이론은 55개 소수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지위를 차지한다.

당시 좌담회에서 이를 지지하고 나선 동북지역 역사학자가 쑨진지다. 쑨 주임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1980년대부터 “고구려계인 예맥족은 신라와 백제를 형성한 한족(韓族)과 다른 종족”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쑨 주임과 함께 고구려사 왜곡의 쌍두마차로 나선 학자가 겅톄화(耿鐵華·57) 퉁화(通化)사범대 고구려연구소 부소장이다. 동북사범대 역사학과 출신으로 지안(集安)박물관 부관장을 거치며 역사학과 고고학을 두루 전공한 겅 부소장은 “평양 천도 후 고구려가 한반도 역사와 밀접해졌지만 본질적으로 고구려 문화는 중국 동북지방의 용(龍)문화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1993년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시에서 열린 고구려문화 국제학술토론회에서 이 같은 도발적 주장을 주도하며 한국 고대사학자들을 경악시킨 장본인들이다. 쑨 주임은 당시 북한 역사학계 원로인 박시형 김일성종합대 교수와 격론을 벌이다 혈압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 마다정이 ‘동북공정’ 설계

이들의 이론적 작업을 실행으로 옮긴 동북공정의 설계자 마다정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산둥(山東)대 역사학과 출신으로 원래 신장위구르 역사의 중국사 편입에 앞장섰던 그는 1995년 제1차 전국고구려학술대회에 참석하면서 동북공정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마다정은 동북공정 전문가위원회 주임을 맡아 리성((려,여)聲·55) 부주임과 짝을 이뤄 쑨진지, 겅톄화 등의 이론을 재편집하고 집대성하는 방식으로 고구려사 왜곡을 조직화했다.

여기에 동원된 학자들이 동북사범대 동북민족강역연구중심의 류허우성(劉厚生), 쑨치린(孫啓林), 리더산(李德山)과 지린성사회과학원의 양자오취안(楊昭全) 조선·한국연구소 소장 등이다.

이 과정에서 정작 고구려사 연구의 아성이었던 옌볜대는 소외됐다. 고구려사가 현재의 국경을 기준으로 한국사이기도 하고 중국사이기도 하다는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도 조선족 출신인 고 강맹산(姜孟山) 옌볜대 교수가 고민 끝에 내놓은 타협안이었다.

○ 자신감있게 중국에 대응을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전 회장(서경대 교수)은 “정작 쑨진지는 일사양용론 지지로 돌아선 반면 마다정은 고구려사 전체가 중국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전 회장은 “고구려사를 전공한 학위취득자가 중국은 박사 2명, 석사 12명에 불과한 반면 한국은 박사 32명, 석사 198명으로 230명에 이른다”면서 “한국학계에서는 보다 자신감을 갖고 고구려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중국 핵심학자들의 주장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4-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