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왜곡 비판한 주은래 ‘인물평전’

중국은 이제 장쩌민(江澤民) 등의 3세대 지도부가 공식 석상에서는 완전히 물러나고 후진타오(胡金濤)를 중심으로 한 4세대 지도부가 본격적으로 굳건한 위치를 차지해 가고 있다.
  
주변국에서 이러한 큰 정치적 변동이 있으면 다른 나라들의 관심은 응당 자국과의 관계 변화일 터이다. 한-중 관계를 전망하기는 힘들지만 양국 관계에서 현재 쉽게 눈에 띄는 최대 걸림돌은 아무래도 고구려사 문제이다. 우리야 현 중국 지도부가 주은래(周恩來) 등의 선배 지도부를 적극적으로 참고하길 바랄 뿐이지만 좀 더 두고 봐야 할 문제이다.
  
“한민족 입장에서 다시 평가한 주은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우리에게는 주은래라는 인물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고구려사를 왜곡한 중국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이 현 중국 지도부의 승인과 후원에 힘입어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는데 반해 최근 드러난 문서를 통해 주은래는 이미 60년대 중국 국수주의 사학자들의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왜곡을 통렬히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프레시안 8월 13일자 기사 참고)
  
<다시보는 저우언라이>(이경일 편저, 우석출판사 펴냄)는 바로 이러한 주은래에 대해 “오늘날 한민족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설훈 전 민주당 의원이 찾아낸 <주은래 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라는 제목의 중국 정부 발행 문건 전문을 수록, 그러한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주은래는 1963년 중국을 42일간 방문한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 20명과 만난 자리에서 “역사는 진실성이 있어야 하고 그러므로 왜곡해서는 안되며,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도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한다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라고 설파하면서 중국의 팽창주의로 고대 한국의 영토가 침탈된 데 대해서도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까지 말했다.
  
"주은래는 'The moved mover'"
  
이 책은 이러한 ‘다큐, 역사서’적인 성격이외에도 주은래의 ‘인물평전’ 성격을 가졌다는 데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은래는 모택동(毛澤東)과 비견될 수 있는 중국 혁명의 양대 지도자로 꼽히고 있는데도 국내에는 주은래에 대한 인물평전이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 책은 그런 상황에서 주은래의 일대기를 서술, 중화인민공화국 창립의 주역이었던 거인 주은래의 사상과 정치 외교력을 재음미해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저자는 주은래의 인물평전을 쓰는데 있어 뉴욕타임스의 1976년 1월 9일자 Obituary, Kai-Yu Hsu의 , 소숙양(蘇叔陽)의 <인간 주은래> 등을 주된 자료로 참조했다.
  
저자의 주은래에 대한 평가는 한없이 높다. 주은래가 사망한 1976년 미국의 저명한 중국문제 전문가이며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존 페어뱅크는 주은래에 대해 “인간적 인물이었고, 이견과 불평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포용하는 대인”이라고 평가하면서 중국의 모택동 시기를 “모택동-주은래 시기”라고 불렀는데 저자는 등소평 시대 또한 “주은래-등소평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주은래가 사망하기 전 해인 1975년 주은래는 4대 현대화 노선을 주창, 중국 현대화의 초석을 깔았으며 문혁으로 실권된 등소평을 다시 기용해서 모택동과 주은래가 사라진 중국을 이끌게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는 핸리 키신저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은래를 가리켜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타인들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지닌 거인”이라는 뜻에서 “The unmoved mover”라고 부른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에 "The moved mover"라는 의미를 하나 더 붙이고 있다.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실천하면서 타인들을 움직이게 하는 자질과 능력을 겸비한 이상적 인간형"이라는 의미이다.

(프레시안 / 김한규 기자 2004-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