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사의 年號사용에 대한 오해

"조선이 임진왜란 때 명(明)의 도움을 받은 이후 명의 연호(年號)를 사용하는 등 충성을 다했다."

최근 어느 중국 잡지기사의 한대목이다.

고구려 역사를 차지하겠다는 중국인들의 생각 밑에는 이런 믿음이 깔려 있다.

그들은 대체로 한국 역사 전체가 중국의 속국 내지 식민지였다는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근거 하나는 바로 한국사가 독립된 연호를 갖지 않고 중국 연호를 사용했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한국이 중국 연호를 사용한 것과 달리 지난 1천4백년 동안 일본은 고유연호를 채택해 왔다.

금방 대조가 된다.

최근의 한.일 관계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익숙해진 일본 연호만 해도 명치(明治 1867~1912),대정(大正 1912~1926),소화(昭和 1926~1989),평성(平成 1989~현재 :평성 15년)이 있다.

그러니 중국 연호를 따르는 한국은 중국에 종속적이었고 독립된 연호를 가진 일본은 주체적이었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사를 타율성 정체성 사대주의등 부정적으로 설명하는 '식민사관'이 판치게 된 데에는 그 바탕에 바로 연호 문제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한국 역사가 일본과 달리 독립된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그리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한마디로 일본은 중국과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름의 연호를 만들 수 밖에 없었지만 한국은 중국과 끊임없이 교류했기 때문에 독립된 연호를 쓰기 어려웠을 뿐이다.

예를들면 신라는 536년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시작으로,開國,大昌,鴻濟,建福, 仁平,太和 등 독자적 연호를 쓰다가 650년에 중국연호를 채택했다.

648년(진덕여왕2년)에 신라사신 한질허(邯帙許)가 중국에서 임금(唐太宗)을 만났더니 "신라가 중국을 섬긴다면서 왜 연호를 따로 쓰는가?" 했다.

한질허는 "중국이 정삭(正朔)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대답했고 그래서 이듬 해 당장 중국은 정삭을 신라에 나눠주었다.

그래서 650년부터 신라는 독자연호를 버리고 중국연호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삼국사기'기록이다.

'정삭'이란 曆法이다.

즉 이듬해 설날 날자, 큰 달과 작은 달 순서, 24절기 등등 중요한 날자를 정해준다.

당시 동아3국 가운데 역법을 완성해 갖고 있던 나라는 중국뿐이었다.

당시 신라와 일본은 역법을 계산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 신라는 중국과 가까웠기 때문에 중국 역법을 얻어오고 그 역법으로 결정되는 그해 연호를 그대로 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위험한 바다길로 멀리 떨어진 일본은 중국 정삭을 얻어올 수가 없었다.

일본은 한번 얻은 역법을 '적당히' 재탕해 새해 역법을 만들어 쓸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렇게 시작하는 새해에 중국연호를 붙일 수 없었고 독자적으로 연호를 붙였다.

그러니 날자가 중국, 한국과 틀릴 수 밖에. 오죽하면 11세기에는 날자가 너무 틀려지자 일본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 역법을 배워오자고 논의한 기록도 보인다.

후삼국의 궁예가 연호를 쓴 것이나 고려가 천수(天授918~933)란 연호를 시작으로 초기에 몇 연호를 사용한 경우도 모두 당시 중국이 혼란중이어서 역법을 받아올 수 없었고 그래서 달력을 알아서 만들어 썼던 증거일 뿐 독립정신과는 관련이 적다.

그렇던 연호에 독립정신을 연계시킨 것은 근대역사학의 해석이다.

대한제국은 1896년 건양(建陽)을 시작으로 광무(光武 1897~1906), 융희(隆熙 19 07~1910)를 사용했고 해방후에는 단군기원,즉 '단기'를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1962년 한국은 "단기 4295년"을 포기하고 국제공동 기원 '1962년'으로 갔다.

그런데 북한은 1997년 새삼스럽게 '주체'라는 연호를 시작했는데 김일성의 생년 1912년을 주체 원년으로 한 '신기원'이다.

한국 역사가 중국 연호를 썼다하여 그 식민지였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어울려 사는 나라 사이에는 햇수 계산(연호)을 달리할 수 없음은 예나 지금이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중국과 교류가 잦아 중국 연호를 함께 쓰는 편이 편리했고 지금은 세계가 함께 어울리니, 서양에서 시작된 '서기'를 채택해 '2004년'이라 부를 뿐이다.

중국 연호를 쓰던 시절의 한국이 중국식민지가 아니었음은 '서기'를 쓰는 지금의 한국이 서양 식민지가 아님과 같은 이치다.

<박성래 / 한국외국어대 교수ㆍ과학사>

(한국경제 2004-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