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문화를 되살리자

단기 4337년 10월 3일, 하늘을 열고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의 뜻으로 새로운 대업의 시작을 기리는 ‘개천절(開天節)’이 또 다시 돌아왔다.

개천절은 서기전 2333년(戊辰年), 단군기원 원년에 국조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음을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로 정하여 매년 이를 기리는 정부의 공식행사가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군조선의 건국일이라기보다는 단군조선 이전 배달국시대로 1565년을 더 소급해 올라간다. 물론 역사학자들의 이의가 많으나 민족의 시원사는 학문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본래의 ‘개천(開天)’의 뜻을 살펴보면 천제(天帝)인 환인의 뜻을 받아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뜻을 펴기 시작한 날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태백일사’의 〈신시본기〉에서는 개천을 개천(開天), 개인(開人), 개지(開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때 개천(開天)이란 하늘의 뜻을 밝혀 새 시대를 열고 능히 만물의 질서를 창조할 수 있게 되어 천리(天理)와 부합되어 일체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개인(開人)이란 사람의 마음자리를 열고 바로 세워 기강과 질서를 잡아 인사를 능통하게 하여 혼과 육신이 성숙하게 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와 더불어 개지(開地)란 땅을 바르게 다스려 만물의 질서를 바로잡음으로서 때를 알아 알맞은 일을 짓고 세상을 변화시켜서 지혜를 닦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인 경축일임과 동시에 그 근본정신이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마음을 열고 서로가 통해 하나가 되는 것’으로 한민족 고유의 천지인(天地人) 문화와 철학을 되새기는 날인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이와 같은 개천의 정신과 문화는 여러 제천 행사를 통해 그 천맥(天脈)이 줄곧 이어져내려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등의 행사가 그것이며, 마니산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등이 그런 과거의 제천행사를 입증하는 사적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해마다 기념하는 우리의 개천절 행사가 담고 있는 정신과 문화는 과연 무엇인가. 헌법 전문 제1장 제9조에 보면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과연 헌법에서 보장하는 전통문화와 민족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천의 문화와 더불어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언급할 때 우리는 그것이 단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올해는 단기 4337년(서기 2004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소위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우리민족은 47대 단군의 역사에 앞서 7대의 한인의 치세 3301년, 18대의 한웅으로 대표되는 한국과 신시배달국의 1565년의 역사가 또한 있었다’고 한다.

나름대로 타당한 자료와 근거를 주장한다. 그렇게 보면 올해가 바로 배달국(倍達國) 개천기원(開天紀元)으로는 5902년, 환국(한국)기원으로는 9203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우리는 진정 자신의 정신적 시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일찍이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는 1990년대 초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지식인들이 중독(中毒:중국의 해독)과 왜독(倭毒:일본의 해독)과 양독(洋毒:서양의 해독) 등 3독에 빠져 있으며, 이 3독을 치유하려면 특히 식민사관에 물든 역사학자들이 반성하고 민족주체성에 입각해 바른 역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때 ‘중독’이란 바로 사대주의 역사관을 의미하며, ‘왜독’이란 식민주의 역사관을 말하는 것이고, ‘양독’이란 실증주의 역사관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최근 역사왜곡,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고구려사 편취문제가 불거진 연유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3독의 사관에 의해 역사의식이 부재하게 되면서 민족의 문화와 정신이 상실된 결과다. 역사의식이 불분명해질수록 우리의 정체성도 이와 함께 표류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개천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한민족의 심성속에 잠재되어 있는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정신을 살리고 이를 한민족의 문화로 계승, 창조해 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천의 문화이다. 그러기에 개천절은 한민족 최고의 명절이다. 흐트러진 한민족의 정체성과 위상은 바른 개천의 문화와 정신을 복원함으로써 다시 세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과 문화가 살아 숨쉬는 ‘개천절’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역사왜곡과 찬탈의 위기를 단지 몇몇 역사학자들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지금이 우리 모두가 선조들의 문화와 정신이 무엇인지 바로 아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왜곡된 역사관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거부하고 잘라버릴 때 우리는 영원히 뿌리 없는 민족으로 남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국가와 사회적인 혼란의 원인도 크게 보면 결국 이러한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잃어버린 데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끊임없는 역사왜곡을 통한 한민족 역사찬탈의 거센 도전은 그동안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정신문화 선진국을 돌아보라. 그들이 무엇을 귀하게 보존하고 가꾸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조상들에 대한 자부심을 어떻게 세우고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시키며 외교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정신문화 수출에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힘으로 세계를 지배한 나라는 힘에 의해 망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정신적으로 문화를 지배한 나라는 영원히 남는다’는 진리를 인류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헌법전문에 표현한대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 그 이름을 영원한 역사에 살아숨쉬는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충분히 이어 받았지만 그 귀함을 모른채 그동안 살아왔다. 그런 점에서 근자에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불붙은 고구려역사 찾기운동은 그동안 잠자던 민족혼을 흔들어 깨우는 데 오히려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본모습을 드러낼 역사적 전환기에 서 있다. 역사의 소명을 피하지 말자. 그리고 역사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단기 4337년, 올해는 형식적으로 찾아오는 예년의 개천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개천은 인류의 희망으로 이제 새롭게 시작돼야 한다.

올해의 개천절에는 우리 모두가 국가적인 여러 혼란스러움을 털고 분연히 일어나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는 개천문화를 통해 한민족과 인류가 새 하늘, 새 땅, 새 인간(弘益人間)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큰 개천축제의 한마당을 열어 한민족의 신명을 살려내자.

그리하여 상생의 하나된 힘으로 진정한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개천문화와 개천정신’부활의 역사를 출발시키도록 하자.

(세계일보 2004-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