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없었다

언제부터 중국사(中國史)인가? 수천 년 이른바 중국의 대륙엔 수많은 나라가 일어나고 없어졌다. 어떤 나라도 이름을 중국이라 부르지 않았다. 진시왕의 진(秦)나라의 음(音)에서 '차이나(China)'가 유래했다. 중국은 없다. 있다면 상상 속의 나라(A Nation of Imagination)일 뿐이다. 중국이란 국호로 불린 적이 없는 중국이 이제 와서 다른 민족사를 한족(漢族)의 변방사로 병탄(倂呑)하자는 것일까?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은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로 방향을 틀고 있다. 궤도수정에 따른 문제발생은 필수요건이다. 이에 따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역적 공동체 확립이 통치를 위한 시급한 과제다. 역사적 한 뿌리를 갖는 정체성의 확립은 현 정권의 정당성과 정체성의 기초를 위해 절체절명의 과제다.

'중국사' 해체작업 시작해야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의 세계화(영토 포함)와 정체성 확립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구상이다. 즉 '간도 찾기'란 한국인의 구토회복 의지에 종지부를 찍고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중화(中華) 세계관으로 설정해놓은 것이다. 역사왜곡은 영토점령의 정당성을 만들어가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고구려사의 주인이 중국이니 북한 땅, 통일한국이 당연히 현대중국사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신 사대주의 논리다.

지금 인터넷에는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이 화제다. 혈통적으로나 영토적으로나 지금의 중국은 허구라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한 13억 인구 중 94%가 한족(漢族)이고 6%만이 조선족이나 위구르족 같은 55개 소수민족이다. 하지만 이들 한족이 중국사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사란 주변 민족에 의한 '정복사'이자 '식민지사' 쯤 된다. 서기 265년 사마염(司馬炎)이 낙양(洛陽)분지에 진(晉)이란 나라를 세우고 멸망하기까지 진의 존속기간은 154년에 불과하다. 이때의 '낙양을 차이나(China)라 하였고, 진나라 사람을 한족'이라고 하였다. 진의 후예인 한족이 중원을 통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한족 역시 오늘날 거대중국의 인구를 형성하기까지는 소수민족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랜 기간 한족은 식민지 민족으로서 아픔과 고통을 겪으며 지내왔던 것이다. 소위 신해혁명(辛亥革命)도 이민족(異民族)인 만주족으로부터의 해방이 주요 슬로건(slogan)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1912년 '중화민국'의 탄생으로 시작된 '중국사'는 100년이 채 안된다. 수천 년의 중국사로 둔갑한 배경은 중국 미래를 위해 학자의 양심을 버린 결과다. 우리의 역사 관리, 우리의 상고사는 어떠한가? 우리에겐 고조선이 없다. 있다면 단군신화에 밀려난 곰과 호랑이의 설화뿐이다.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인 이 나라에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선포했던 국조(國祖)가 없는 나라다.

고구려사의 버팀목은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고구려 다물(多勿)의 영토적 근간이며 천손(天孫)의 정신적 시원지다.

동북공정 추진의 핵심자 쑨진지(孫進己)는 "고구려인은 중국인"이라며 "언젠가 북한이 점령하고 있는 중국 땅을 돌려주어야 할 것"이란 억지논리를 펴고 있다. 허상의 중국이 실상의 한국사를 탈취하려는 기현상이다. 이제부터 우리도 '중국사' 해체작업에 들어가자. 중원엔 한족사, 조선족사, 만주족사, 묘족사 들이 있을 따름이다. 역사 병탄공작은 문화제국주의의 또 다른 침략의 발상이다. 고구려사를 지키는일, 민족의 명운을 걸고 싸워야 할 일이다.

<이형래 / 세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뉴스메이커 2004-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