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간도문제’에 대한 환상

지난 8월말 한·중 양국이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된 양해사항에 구두합의함에 따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선족의 동요와 한반도 정세 변화라는 지극히 민감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배경으로 하는 동북공정이 쉽사리 중단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때에 학계 일부와 정치권에서는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한 카드로서 ‘간도협약 무효’를 제기하고 나섰고, 간도문제가 가지는 곤란이나 위험에 대한 아무런 고려없이 ‘간도협약 무효’ 슬로건은 방송과 인터넷에 널리 유포되었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독도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인구에 회자되었던 ‘100년설’(영토문제를 100년 동안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으면 점유국의 영토로 확정된다는 괴설)이 다시 떠돌고 있다.

하지만 2,000년 전의 고구려사와 달리 간도문제는 현실적 영토문제이다. 양국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민감한 문제인 만큼 누가 보더라도 ‘간도는 우리 땅’임을 확증할 수 있는 명명백백한 근거 위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백두산정계비의 ‘투먼(土門)’이 쑹화장(松花江)이라는 주장에만 의존하고 있는 간도 영유권 주장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지리적 범위 근거 미약

첫째,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누구도 간도가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투먼장이 쑹화장 지류이고 쑹화장이 헤이룽장(黑龍江)으로 들어간다면 쑹화장 이동, 헤이룽장 이남의 지역이 모두 간도라는 것인지 아니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조선인이 많이 살고 있었던 두만강 북안의 왕칭(汪淸), 화룽(和龍), 옌지(延吉) 등지가 간도라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도, 합의된 바도 없다. 당장 영유권을 주장해야 할 지역의 지리적 범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간도 영유권 주장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를 방증하는 것이다.

둘째, 조선과 청 사이에 실제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두만강 상류의 지류 중 어느 것을 국경으로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정계비를 설치할 당시 청은 압록강·두만강을 넘은 것을 국경 침범으로 간주하였고 조선은 청의 국경 조사에 대응하여 압록강·두만강 이남을 강역으로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정계비의 설치 목적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되는 두만강 지류 중 하나를 국경으로 정하는 것이었다. 1885년과 1887년 두번에 걸친 조·청 국경회담에서도 조선측은 하이란장(海蘭江·두만강의 하류 지류) 또는 훙투수이(紅土水·두만강의 상류 지류)를 국경으로 주장했으며, 중국측은 훙투수이보다 남쪽에 있는 스이수이(石乙水)를 국경으로 주장하였다. 정계비 설립 이후 투먼장이 두만강과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19세기 후반 투먼장이 쑹화장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쑹화장이 공식적인 국경으로 제기된 것은 아니었다.

셋째, 북한과 중국간에 체결된 ‘조·중 국경조약’을 무시하고 간도 영유권을 주장할 경우 백두산 천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국경회담에서 스이수이 국경을 주장한 청은 1909년 간도협약으로 정계비와 스이수이를 국경으로 확정하였고, 이로써 백두산 천지는 청의 영토가 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북한과 중국간에 국경회담이 다시 열렸고, 그 결과 1962년 ‘조·중 국경조약’으로 백두산 천지의 중앙과 훙투수이를 국경으로 확정하였다. 이 때문에 옌볜조선족자치주 주장인 주더하이(朱德海)는 백두산 천지를 북한측에 팔아넘긴 매국노로 몰려 수난을 당하였다. 만약 이러한 북한의 ‘성과’를 무시하고 간도협약을 무효로 할 경우 현재 북한이 영유하고 있는 백두산 천지의 절반 및 훙투수이에서 스이수이에 이르는 영역이 분쟁지로 될 위험도 있다.

天池 영토분쟁 불똥우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간도협약이 무효가 되면 자동적으로 간도는 우리 땅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환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한·중간에 ‘영토분쟁’이 발생할 경우 피해를 입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일 수 있다. 간도협약 무효를 제기하는 것은 현재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맹목적이게 만들 뿐 아니라 영토문제에 민감한 중국을 자극함으로써 동북공정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조차 어렵게 할 뿐이다. 지금 시급한 문제는 간도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일이 아니라 냉전 해체 이후 새롭게 짜여지고 있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동북공정의 의미와 위상을 파악하는 일이다.

<배성준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경향신문 2004-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