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용천부

중국 당국은 반세기 동안 발굴해온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의 항공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고구려를 훔치려면 같은 줄기에 따라 올라오는 발해까지 자기네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속셈의 시발탄이다. 그 속셈의 허구를 조목조목 들어볼까 한다. 고구려를 망친 당나라는 유민의 반발을 막고자 왕족 한 사람을 세워 요동땅에 조선군왕(朝鮮郡王)이라는 괴뢰정권을 세웠다.

이 소고구려국에서 걸걸중상(乞乞仲象)이라는 고구려 유민(遺民)이 고구려 세력을 업고 반란, 당나라 진압군을 무찌르고 소고구려를 기반으로 발해국을 세우고 걸걸중상의 장자인 대조영(大祚榮)을 초대왕으로 추대했다. 이로 미루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발해를 내외로 부흥시킨 3대 임금인 대흠무(大欽茂)가 수도를 이 상경용천부로 옮겼는데 도성은 당나라의 서울 장안성을 본뜬 것이 사실이나 그 건물은 고구려 건축이었음은 그 유적에서 출토된 기왓장의 문양이나 크기가 고구려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미루어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주변국가들이 당 연호(年號)를 씀으로써 사대(事大)했지만 발해는 당 연호를 거부하고 독자 연호를 썼다. 보다 중요한 것은 발해에서 쓰던 말이 고구려계의 한국말이라는 점이다. 발해사신이 일본에 갔을 때마다 신라말 통역관을 임석시킨 것으로 미루어 발해말이 중국계나 여진계가 아닌 신라에서도 통했던 한국계였음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출토된 불상 불화에서 얼굴 표정이나 옷 주름까지 고구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상경용천부 흥륭사터에 서 있는 유일한 건조물인 팔각 석등에서 중국 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ㅡ한국 사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양새다. 곧 겉은 당나라인 척하고 속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자임 자존하고 그 정신을 문화에 침투시켰음이 상경용천부 발굴에서 완연히 들어난 것이다. 발해가 망해갈 때 상류사회는 물론 하류층에서도 신생 고려국으로 대량 망명한 역사적 사실은 그 백성이 고구려 유민의 피와 정신을 공유했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그 발해마저 한국의 살붙이 피붙이에서 찢어발기려 들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 이규태 2004-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