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고구려魂이 몰려온다

문화예술계에 ‘고구려 바람’이 불고있다. 만주 벌판을 지배하며 한민족의 활동 무대를 동아시아 대륙으로 확장시켰던 고구려. 그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편입시키려는 중국 정부와 학계의 왜곡에 한국 문화예술인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고구려 지키기’가 음악·연극·드라마 등 문화예술의 전분야로 확산되는 양상. 대부분 단발성 기획을 뛰어넘는 장기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일부 작품은 북한배우의 출연 및 북한 현지 공연도 추진하고 있다.

음악계가 시도하는 고구려 ‘부활’이 눈에 띈다. 10월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리는 ‘되살아나는 소리, 고구려’. 한국민족음악인협회가 고구려를 음악적으로 복원하려는 취지로 마련한 공연이다.

한국의 전통 타악기와 록밴드가 어우러진다. 이 협회의 대중음악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성씨는 “역사는 결코 책 속에만 존재하는 화석이 아니다”라며 “노래의 힘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음악인들이 한데 뭉쳤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 출연자들은 모두 노개런티로 무대에 선다. 지리산에 사는 젊은 작곡가 한태주의 ‘고구려 벽화’를 손병휘가 오카리나로 연주하고, 유리왕의 시 ‘황조가’와 을지문덕 장군의 ‘오언시’ 등이 현대적 창작곡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밖에 ‘하늘의 자손이여’ ‘되살아오는 고구려’ ‘에헤라 달구’ ‘백두산에 서면’ 등 고구려의 활달한 기상을 형상화한 많은 노래들이 첫선을 보인다. 한국민족음악인협회는 “내년 봄에도 같은 주제의 공연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02)364-8031

고구려를 대표하는 악기로 통하는 거문고. 1500년 연륜의 거문고가 고구려의 영혼을 장중한 음률로 표현하는 연주회도 마련돼 있다. 10월5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고구려의 혼, 거문고의 힘’. 정대석의 위촉곡 ‘고구려의 여운’은 고구려인의 기상과 용맹성을 표현한다. 1악장 ‘고구려의 여운’, 2악장 ‘회상’, 3악장 ‘무용총의 벽화’, 4악장 ‘고구려의 기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동기가 작곡한 ‘고구려의 혼’은 퓨전국악 그룹 ‘슬기둥’의 손에 의해 현대적 감각으로 연주된다. 역동적인 동살풀이 장단을 바탕으로 신디사이저와 타악기가 웅장한 스케일로 어울린다. (02)760-4690

연극 공연도 고구려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 준비에 한창이다. 교육극단 달팽이(대표 주리안 경희대 교수)는 개천절인 10월3일부터 내년 1월30일까지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KOUS)에서 OHP채색 그림자극 ‘동명성왕’을 공연한다. ‘동명성왕’은 교육극단 달팽이가 해마다 한 편씩 만들 계획인 고구려 프로젝트의 첫번째 작품. 극단측은 ‘광개토왕’ ‘살수대첩’ ‘연개소문’ 등 고구려사와 관련한 굵직한 사건들을 매년 교육극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이번 ‘동명성왕’은 알에서 태어난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극단측은 고구려 프로젝트를 향후 5년에 걸쳐 애니메이션·책·캐릭터·온라인게임·영화·드라마 등의 제작·판매로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02)3444-0841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구려 고분 ‘안악3호분’(황해도 안악군 소재)의 미스터리를 고구려의 장쾌한 역사 속 비극적 사랑의 거대 벽화로 복원한 국악뮤지컬 ‘안악지애사’(安岳之愛史)가 지난 10일 시작돼 내달 2일까지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 무대에서 초연 공연되고 있다. 제작사인 (주)비단수엔터테인먼트의 오금열 대표는 “고구려 고분 속 문양과 캐릭터 등을 ‘원 소스 멀티 유즈’ 문화상품으로 만들고 북한 공연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02)558-7854

방송가에선 ‘모래시계’의 콤비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고구려 건국과 광개토대왕의 대륙 정벌을 소재로 ‘태왕사신기’(太王四神記)를 준비중이다. 내년 말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36부작 HD드라마다. 단군신화를 바탕으로 고구려 시조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 시점부터 이야기가 펼쳐진다. 청룡·백호·주작·현무가 사람으로 살아가며 사랑하고 증오한다. 수천년의 환생을 거듭하는 판타지적 요소가 짙다. 김종학 PD는 “일본의 ‘쇼군’, 중국의 ‘삼국지’와 ‘수호지’ 등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적 이야기처럼, 우리 역사를 상품화해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북한의 고조선 및 고구려 유적지를 담기 위해 북한 지역 촬영을 추진중이며, 북한 배우의 출연도 검토하고 있다. 강원도에 드라마 오픈세트 겸 고구려 민속관을 세워 드라마 촬영은 물론 의상, 소품, 무기, 미니어처 등을 전시한다. 광개토대왕비와 능을 실물 크기로 세워 고구려 관련 테마파크로 만들 예정이다.

한편 한반도에 현존하는 유일한 고구려 비석인 ‘중원고구려비’가 남아 있는 충북 충주시에서는 25일부터 내달 10일까지 고구려 유물 특별전이 열린다. 충주문화원과 고구려지키기국민운동본부가 충주체육관 내 특별전시관에서 ‘살아오는 고구려’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전시회다. (043)847-3906

(경향신문 2004-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