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북한 문화원형의 디지털화

개성공단 사업으로 새로운 차원의 남북한 교류가 전개되고 있는 데 발맞추어 문화콘텐츠 분야에서도 교류가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하나로통신이 북한과 공동 제작한 애니메이션 ‘게으른 고양이 딩가’와 ‘뽀롱뽀롱 뽀로로’, LG텔레콤이 서비스하고 있는 북한 모바일 게임 ‘례성강의 장기전설’ ‘프로 비치 발리볼’ 등이 바로 그 구체적인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왕후 심청’은 6년간 65억원을 투입, 동양계 할리우드 애니메이터인 넬슨 신 감독의 지휘로 제작된 디즈니 풍의 애니메이션이다. ‘왕후 심청’은 국내 제작사가 북한에 프로덕션을 두고 모든 원화·동화·음악 제작을 아웃소싱해 제작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축제인 안시페스티벌 경쟁부문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북한의 문화콘텐츠는 사상 교육적인 측면이 강하고, 오락성보다는 예술성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리얼리즘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이런 특징을 잘 살리면서 남북한 문화콘텐츠 교류와 공동제작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북한 문화원형의 디지털콘텐츠사업이다. 북한 문화원형의 디지털 콘텐츠화를 남북한이 공동으로 추진해야 하는 시대적·산업적·역사적 필요성과 기대효과는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결코 개성공단에 못지않을 것이다. 우선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인문·역사학계의 꾸준한 학문적 노력과 함께 북한 문화원형을 창작소재로 활용하는 등 대중 문화적 접근까지 동시에 추구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국내 역사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남북한 공동으로 북한 문화유산은 물론 중국과 연해주 지역에 산재해 있는 우리 문화원형에 관한 체계적인 분류체계와 디지털화 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문화관광부와 문화콘텐츠진흥원은 2002년부터 약 3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70여개의 남한 지역 문화원형 콘텐츠를 개발, 올해부터 문화산업발전을 위한 창작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작년에 수행한 북한·중국 및 연해주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 문화원형에 관한 기초연구는 괄목할 성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일단의 디지털화 작업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연구에도 많은 기여를 할 뿐만 아니라 남북한간의 역사 연구 교류와 문화예술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작업이다.

북한 문화원형의 디지털화와 더불어 추진되어야 할 사업은 북한 문화원형을 활용한 창작인프라 구축이다. 북한의 문화원형 중 애니메이션 ‘뮬란’과 영화 ‘영웅’ ‘연인’과 같은 세계시장에 통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의 창작소재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 문화원형을 디지털 콘텐츠화하여 이를 활용하여 만든 창작물을 세계 시장에 선보인다면 이는 우리 문화콘텐츠산업 발전은 물론 우리 역사의 우수성까지 알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북한지역의 문화원형 디지털 콘텐츠화 사업과 고구려 역사 왜곡의 대응책으로서 대중 문화적인 접근이 왜 필요한가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추진체계 구성과 예산 확보이다. 북한 문화원형도 우리 민족의 훌륭한 정신 문화적 자산이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창작 인프라 확대를 위해 문화관광부를 주축으로 정보통신부와 통일부가 서둘러 추진체계를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문화원형을 디지털 콘텐츠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중장기 플랜 수립과 예산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이 사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인문·민속학자들의 참여 유도는 물론 북한 역사학자와 북한 관련 기관과의 채널 확보와 유지에도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성모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콘텐츠개발본부장>

(전자신문 2004-9-21)